나의 고향―내가 태어난 고향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유독 먼 화장실 때문에 늦은 밤 눈을 비비며 대청을 내려설 때 칠월의 밤하늘엔 은하수의 강이 흘렀다. 그리고 천지를 흔드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함께 나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방과 후 소를 둑에 풀어놓고 숙제를 할라치면 몰려오는 졸음에 냇가로 뛰어들어 잠수를 했고 갑자기 몰려오는 먹구름과 천둥 번개….
또다른 나의 고향―내가 태어난 도시는 숨막힐 듯한 침묵에 짓눌려 있는, 나에게는 틀림없이 부정적이었던 경험만 가지고 있다. 단조롭고 지루한 하루의 경험은 창문을 열면 지나치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일과 지겹게도 보아왔던 자습서를 들추는 일이었다.
나는 이 두 도시의 대조적인 분위기를 장소의 이원성이라 부른다. 성인이 돼 찾아가본 초등학교 운동장은 마치 자신이 거인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외부 풍경을 보고 자란 어린 시인은 영혼을 구조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얼마나 배려하며 설계에 임하였던가.
미술학도였던 일산 다가구주택의 건축주 김동명씨는 시골에서 같이 자란 죽마고우로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아파트촌에서 자라온 그 딸에게 자연의 감성보다 더 시적인 장소를 어떻게 경험하게 해줄 것인지가 나의 고민거리였다.
또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극복하는 일도 과제였다. 획일적인 사고, 명확한 질서체계는 신도시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우리의 대지는 단순히 땅으로서의 존재가치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으로부터 존재를 허락받고 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첫번째 관심사는 상업지구의 얼굴로부터 도망치는 일이었으며 평당 공사비 2백만원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일이었다.
일산 다가구주택의 입면은 모차르트의 선율과도 같은 구성이다. 드라이비트의 차가운 백색면은 악단의 베이스와 같은 규칙적인 리듬을 제공한다. 이차적 판의 개념은 나뭇살과 쪽빛으로 악단의 주역인 클라리넷의 화음으로 강한 스타카토를 소화해 내고 있는 작은 콘서트이다.
3층 거실에는 새로운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조각된 빛의 창이 있다. 이 천창은 바람과 비 눈의 흔적이 시간에 의해 변화하는 공간의 「무브망」을 인간에게 제공해 준다.
전면에는 일상적인 창 그리고 나비모양의 경사진 창을 따라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스미는 빛의 창으로 깊은 여름날의 별자락이 거실로 스며들게 한다.
전인호<아뜨리에 데스빠스 소장>
▼약력
△중앙대 건설대학원 졸 △파리국립건축4대학 졸 △정림건축 건축문화설계연구소 근무 △중앙대 박사과정 △동국대 경기대 강사 02―576―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