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방형남/투명한 정치가 아쉽다

  • 입력 1997년 12월 21일 20시 24분


프랑스의 투표함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투표가 시작될 때 투표함 속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투표용지가 한장 한장 쌓이는 모습도 분명히 지켜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투표함은 튼튼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총선에서는 별다른 투표시비가 없었으나 함 속에 부정한 투표용지를 넣어둔다고 해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일에 보여준 모습도 달라 비교가 된다. 95년5월7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일. 승리가 확정되자 당선자 자크 시라크는 승용차에 몸을 싣고 약 한시간 동안 파리의 밤거리를 누볐다. 시라크는 세번의 도전끝에 대통령이 된 기쁨을 자신이 이끌 나라의 상징인 파리시내를 누비면서 마음껏 표현했다. 그는 수행원도 없이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마주치는 국민의 축하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의 파리시내 드라이브는 경호차량도 따라붙지 않은 단출한 것이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시라크를 직접 만나지 못한 유권자들도 그를 오토바이로 추적한 TV방송국 기자 덕분에 당선자의 기쁨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김대중(金大中)당선자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18일밤 일찍 귀가한 그는 19일 오전 8시가 돼서야 처음으로 국민에게 모습을 보였다. 그를 지지한 1천32만6천2백75명의 유권자들은 주인공도 없는 가운데 밤새 당선축하를 한 것이다. 그가 대통령과 전화통화 등을 하며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는 했으나 어떤 식으로 네번의 도전끝에 대통령이 된 기쁨을 표현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행히 김당선자는 TV를 통한 국민과의 대화를 연 2회이상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이같은 약속이 속이 들여다 보이는 투표함도 만들고, 기쁨은 국민과 부닥치며 나누는 대통령이 되는 묘약이 되었으면 한다. 방형남<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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