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강원용/김대중 당선자에게

  • 입력 1997년 12월 20일 08시 07분


김대중(金大中)후보의 당선 보도를 접하면서 감회가 깊었다. 동해(東海)에서 상어 입에 들어갈 뻔한 후 나를 찾아왔던 일, 사형선고를 받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최후진술을 했던 모습들이 생각나서였다. 우선 김당선자는 국민에게 한 공약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믿을 신(信)자는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말은 보증수표 같아야 한다. 어느 때보다 시련이 크겠지만 국민 앞에 한 공약은 최선을 다해 지켜야 신뢰와 존경을받는 대통령이될수 있다. ▼경제-화합 무거운 책무▼ 당선자에게 제안하고 싶은 첫째 문제는 「민족화합의 대과제」다. 반드시 남북간의 분단 갈등 대결구도를 전향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에 우리 민족은 자멸하게 된다. 남북간의 화해문제는 먼저 고질병같은 우리 사회 내부의 대결구도를 화해구도로 바꾸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번에 낙선한 두분과 손을 잡아야 하고, 김당선자를 지지하지 않거나 투표를 하지 않은 60%의 유권자에 대한 포용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뿌리깊은 지역간 대결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한 사람인 김당선자 스스로 호남 사람들을 설득해 지역감정 해소에 앞장서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 중의 하나가 DJP연대인데 이 관계는 앞으로도 더욱 결속되어야 한다. 새 대통령 당선자는 4.19 이후 민주당 정권의 신파(新派)에 속했고 YS(김영삼대통령)는 구파(舊派)에 속해 있었다. 그 신구간의 추잡한 갈등이 5.16을 불러온 원인이 되었다는 뼈아픈 자각을 해야 한다. 세대간 남녀간 노사간의 협력구도를 튼튼히 하고 남북한만이 아닌 전세계에 산재한 한민족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로 50년만에 이룬 수평적 정권교체를 새로운 민주적 정치구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전권을 쥐고 지시, 군림해오던 일들을 권력이 분담되는 수평적 구도로 바꿔야 한다. 이제 정보화사회는 거미같이 느슨하게 거미줄을 치고 조정하는 민주적 지도형으로 바뀌어야 하고 밑으로부터 권력이 올라오는 참여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야 한다. 셋째로 가장 시급한 과제인 경제회생이다. 우선 경제정책에 대한 기본철칙을 확실하게 제시해 주기 바란다. 오늘의 경제파탄은 박정희대통령의 경제성장 제일주의에서 연유되었다. 「돌로라도 떡만 만들면 된다」는 식으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만 잡으면 만사 해결된다」고 하는 악(惡)의 영(靈)의 철학이다. 경제는 국민을 고루 잘 살게 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철학이 정경유착을 만들어 독점재벌주의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관권주도형 경제가 시장경제로 둔갑했다. 그 대가로 인한 대대적인 환경 파괴의 실상은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 경제회생은 모래 위에 짓는 집과 같다. ▼21세기 신바람 불어주길▼ 한가지 더 간곡하게 바라는 것은 문화정책과 방송정책이다. 이데올로기와 경제권 중심으로 나뉘었던 20세기는 지나가고 문화다원주의시대, 그 중에서도 문명의 중심축이 동양문화권으로 향하는 21세기가 다가온다. 이제 우리 민족은 문화를 통해서 전세계를 향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화정책은 허울 뿐이다. 내가 알기에 김당선자의 문화정책 부분에 대한 문화인들의 기대가 크다. 특히 방송정책은 전세계 민주국가에는 없는 정책을 대한민국만 고수하고 있다. 전파매체인 방송을 관권과 재벌의 손에서 시청자인 국민에게 그 권한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 국민 사이에는 신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 민족은 신바람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새 대통령의 임기 중엔 이 신바람이 꺼지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강원용(목사/크리스챤아카데미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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