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세계적 뉴스된 「김대중씨 당선」

  • 입력 1997년 12월 19일 20시 24분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한 외국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취재기자 숫자부터 그랬다. 중앙선관위에서 프레스카드를 발급받은 외신기자만도 15개국의 2백85명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까지 겹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 아사히신문은 2명의 서울 상주 특파원을 두고도 13명의 기자를 추가 투입했다. 그들은 『김대중(金大中)씨의 당선은 이회창(李會昌)씨 당선의 경우에 비해 기사 분량을 3배나 늘어나게 했다』고 전했다 ▼김대중씨의 당선이 세계적 뉴스가 된 이유는 그의 인생 역정에도 있다. 고졸 학력, 사업가로서의 성공, 4수(修)만의 국회 진출, 다섯 차례의 죽을 고비, 6년의 감옥생활, 10년의 연금과 망명, 그리고 다시 4수 끝의 대통령 당선. 그의 고난은 한국 현대정치의 부끄러운 역사 그 자체이며 그의 영광은 집념의 인간승리다. 외국언론들이 그를 남아공의 만델라, 폴란드의 바웬사, 체코의 하벨에 비유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나라의 긍지일 수 있다 ▼일본 정치에는 「산카쿠다이후쿠추」(三角大福中)라는 말이 있다.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떼어내 만든 말이다. 이들은 동일세대의 라이벌이었으나 모두 총리(수상)를 지냈다. 어쨌든 출중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3김씨가 이들과 비슷할까. 만약에 의원내각제로 바뀐다면 김종필(金鍾泌)씨도 집권할 가능성이 있을테니까 ▼소수파였으나 깨끗했던 미키는 다나카 내각이 금권스캔들로 총사퇴하자 집권의 행운을 잡았다. 후쿠다는 다나카에게 패배한 숙적이지만 총리 다나카의 간청을 받아들여 대장상(재무장관)으로 입각, 오일쇼크를 이겨냈다. 3김씨의 상호관계도 변전(變轉)을 거듭해 왔으나 어딘가 이들과 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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