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 직전 선장이 타전한 SOS가 묵살되면 그 배의 운명은 뻔하다.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주권을 넘겨주는 과정은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행측은 3월부터 금융 외환 위기를 당시 강경식(姜慶植) 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경제수석에게 설명, 긴급 대처를 요청했으나 묵살되었다는 보도다. 10월말엔 이경식(李經植) 한은총재가 대통령과의 직접 통화에서 위기의 심각성을 역설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재정경제원 실무자들의 외환위기 우려에도 강전부총리는 『사태를 너무 어렵게 보지 말라』며 일축했다. 한은 재경원 경제부총리 경제수석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정책 라인이 불통 상태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 결과 상황을 오판하고 정책대응에 실패해 국가경제를 파탄에 빠뜨린 것이다. 『경제의 기초(펀더멘털)는 괜찮다』는 강전부총리의 오만이 극에 이르면서 비극이 싹튼 것 아닌가
▼협상 후 IMF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실책은 명확해진다. 외환위기가 가시화한 10월말 이후에도 정부는 일관성과 실효성이 없는 정책으로 시간을 낭비했다. 더 이상 버틸 여유가 없는 11월에 들어서도 IMF구제금융 신청을 미뤄 외환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왔다는 지적이다. 국가지도자의 리더십 부재와 정책당국의 위기관리 능력 상실로 국민이 참담한 좌절속에 빠져든 것이다
▼책임소재가 이처럼 분명해져도 강전부총리는 당당하다. 그는 각계 인사에게 보낸 퇴임 인사장에서 일말의 자괴심은 보였지만 그보다는 책임전가에 급급했다. 경제의 기초는 튼튼한데 금융개혁법이 무산되어 이 지경이 되었다는 변명이다. 소방수로 나선 임창열(林昌烈) 부총리가 사과하는 마당에 불을 내고 물러선 강전부총리는 큰소리다. 그렇다면 자신의 말처럼 튼튼한 경제를 누가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국민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