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오복환/『「촌지」안받는 병원도 있구나…』

  • 입력 1997년 12월 6일 08시 21분


「촌지없는 세상」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20대 주부다. 특히 병원에서는 더욱 촌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물론 촌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달하는 것이겠지만 촌지를 받지 않고서도 직무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은 항상 있었다. 28개월된 딸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오타시반점과 혈관종을 갖고 있었다. 너무나 속상하고 걱정이 돼 유명하다는 병원은 거의 찾아 다녔다. 그때부터 촌지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유명한 「의사선생님」을 만나뵈려면 6개월은 기다려야 했다. 급한 마음에 아는 사람을 통해 식사라도 하시라고 봉투를 내밀었더니 6개월이 일주일로 바뀌었다. 레이저수술로 유명한 모 대학병원을 찾아가 수술을 받기도 했다. 감사의 마음으로 백화점 상품권을 봉투에 넣어 드렸더니 의례적인 인사로 당연히 받는 모습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만났는데 『마취과 선생님과 간호사들에게도 인사를 하세요』라는 말을 남기면서 병실을 나가는 게 아닌가. 「인사」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도 남았다. 환자가족이라고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내면서도 죄인처럼 굽실거리며 촌지를 전해야 하니 너무 싫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강남의 한 종합병원이었다. 깨끗한 환경에 상냥한 직원들의 보살핌으로 얼었던 마음이 녹고 편안하게 진료를 받았다. 수술을 하게 되면서 촌지 생각은 했지만 담당의사가 전혀 내색하지 않기에 엄두를 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2차수술 전날 가까운 호텔에서 뷔페권을 다섯장 구입했다.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간 뒤 우리 부부는 외래피부과로 찾아가 담당간호사에게 『식사나 하세요』 하면서 뷔페권을 건넸다. 사양을 하기에 책상 위에 봉투를 남기고 돌아서 나오는데 뒤따라오면서 마음은 고맙지만 받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주위의 시선 때문이리라 생각하고 승강이 끝에 기어이 손에 쥐어주고 왔다. 『그럼 그렇지』 하는 속마음과 함께…. 그런데 수술이 끝나고 2주일쯤 지나자 병원으로부터 『뷔페권은 현금화해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하겠다』는 편지가 왔다. 정말 우리나라는 「촌지없는 세상」이 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오복환(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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