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어제부터 여야 대통령후보와 원로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이다. 대선정국이 혼미하고 경제와 사회의 불안이 증폭되는 시기에 국정 최고책임자와 차기 정권을 맡겠다는 대선후보들, 그리고 국가 원로들이 머리를 맞대는 것만으로도 일단 그 의미는 크다. 이번 연쇄 개별회동이 정치 경제 사회의 안정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대통령이 그 첫 만남인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와의 회담에서 정국과 경제의 안정에 서로 협조하고 안보에 초당적으로 대처하자는 데 합의한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특히 김대통령이 『나는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거나 돼서는 안된다 하는 것은 없다』며 자신과 정부기관들의 선거중립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정계개편 문제에 대해서도 『나는 전혀 관계없다』고 잘라 말한 것을 우리는 평가하고자 한다. 얼마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누구는 안된다」는 식의 망발을 한 데다 김대통령이 막후에서 대선정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느냐는 억측도 없지 않았다. 김대통령이 대선엄정중립과 공정관리 의사를 직접 밝혀 그런 억측을 해소한 것은 대선정국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김총재도 하고 싶었던 많은 말을 한 것 같지만 김대통령을 만나는 대선후보와 원로들은 나라의 여러 어려움에 대해 직언하고 그 해결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대선후보들은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국가지도자라는 사실을 명심해 선거에서의 손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나라의 장래를 함께 걱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김대통령과의 회동을 거부한 것은 모양이 안좋다. 이총재의 처지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쇄회동에 불참할 것까지는 없어 보인다.
김대통령과 대선후보들은 개별회동이라고 해서 혹시라도 밀실담합 같은 것을 해서는 안된다. 최대한 투명하게 대화해야 한다. 김대통령이 김총재와의 회담에서 『흔히들 나에 대한 사후보장 얘기를 하는데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밀실담합 의혹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만의 하나, 그런 의혹을 남긴다면 김대통령의 대선엄정관리 의지는 신뢰받지 못하고 대선정국 또한 걷잡을 수 없이 회오리칠 것이다.
내달초까지로 예정된 연쇄회동이 끝나면 김대통령은 나름의 정국구상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김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이처럼 정국의 전면에 나선 것은 4개월의 잔여임기에 몇가지 국정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임을 시사한다. 김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경제살리기와 민생안정에 진력하면서 대선의 공정한 관리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특히 이번 대선을 가장 민주적이고 모범적인 선거로 만드는 일은 이 시대의 당위(當爲)이며 김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과업이다. 김대통령은 스스로 다짐했듯이 사심(私心)을 버리고 초연한 위치에서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럴 경우 김대통령은 그 하나만으로도 퇴임 후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