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20)

  • 입력 1997년 10월 9일 08시 03분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46〉 『이 술의 풍미에 대해서는 시인들도 이렇게 노래했답니다』 이렇게 말하고난 대신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술은 백약(百藥)의 으뜸, 금빛 처녀의 아양에 낫지 않는 병이 어디 있으랴? 돌이라도 이것에 젖으면 기뻐서 움직이리, 어두운 밤중에, 물항아리의 처녀가 깨어 일어나면 온 집안은 눈부시도록 휘황하게 밝아지리. 그밖에도 대신은 술의 영험함에 대하여 그럴 듯하게 늘어놓기도 하고, 술을 찬양하는 시들을 읊기도 하면서 연방 마루프에게 술을 권하였다. 그렇게 되자 처음에는 다소 망설이던 마루프는 마침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 단숨에 마셔버렸다. 나중 일이야 될대로 되라는 듯이. 그러자 대신은 내심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연방 술을 따랐고 마루프는 냉수 마시듯이 잔을 거듭하게 되었으니 마침내 지각이고 뭐고 다 잊고 사물의 선악도 가릴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루프가 술에 취해 제정신을 잃어버린 걸 보자 대신이 말했다. 『여보시오, 마루프 씨. 정말이지 나는 당신한테 놀랐소. 나는 배꼽이 떼어진 후로 당신만큼 많은 재물을 쌓은 상인은 본 적이 없고, 당신보다 도량이 넓은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소. 당신이 하시는 일은 임금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상인 나부랭이가 할 일이 아니오. 코스로에의 대왕도 그처럼 많은 보석을 갖고 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오. 그러니 당신은 지체나 근본은 감추고 있는 게 틀림없소. 그렇지 않소? 당신은 자신의 높은 신분을 굳이 감추고 스스로를 상인으로 변장한 까닭이 뭐요? 그 많은 보석들은 대체 어디서 났소?』 그밖에도 대신은 온갖 말로 마루프를 추켜세우면서 떠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술에 취해 사려분별을 잃어버린 마루프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 나는 상인도 아니고 임금도 아니랍니다. 알고보면 아주 하찮은 사람이지요』 이렇게 말하고난 마루프는 자신의 비밀을 몽땅 털어놓고 말았다. 심지어는 도장반지에 얽힌 비밀까지도. 마루프의 이야기를 듣고난 대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오, 마루프 씨.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반지에서 마왕이 나오다니. 제발 부탁이니, 그 모양이라도 볼 수 있게 반지를 보여주십시오』 『그야 뭐 어려울 것 없지요』 마루프는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반지를 뽑아 대신에게 내주었다. 『이걸 문지르면 마왕이 나온단 말이지요?』 『그렇소. 한번 문질러 보구려. 마왕이 나올 테니. 그놈의 생김새를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테니까요』 술에 취한 마루프는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이렇게 말했고 대신은 반지를 문질렀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