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18)

  • 입력 1997년 10월 7일 07시 56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44〉 왕의 말에 대신은 계속했다. 『헤픈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왕에게도 흔치 않은 금은이며 주옥 다이아몬드 그 많은 물건이 대체 어디서 났을까요? 어째서 그런 고가의 물건들이 한갓 상인의 손에 있을까요? 여기엔 필시 무슨 곡절이 있습니다』 『그 물건들이 어디서 났건, 내 보고에서 훔친 것이 아닌 바에야, 굳이 상관할 건 없지 않은가?』 『그렇지가 않으니까 문제입니다. 사위님께선 왕위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인심 후하게 금품을 뿌려 장병들을 자기편으로 만든 다음 임금님을 치고 왕토를 뺏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은 왕은 자못 심각해졌다. 대신은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임금님께서 이의가 없으시다면 저는 이 일의 진상을 밝히고자 합니다』 듣고 있던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진상을 밝힌단 말인가?』 『사위님을 불러 이렇게 제의해 보십시오. 「여보게 사위,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이제 짐도 도착했으니 우리 함께 화원으로 가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로 하세」 이렇게 유인한 뒤 술을 내시고 술을 권해보십시오. 술에 취하면 멍청해져서 사려분별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사실을 캐물으면 비밀을 실토하고 말 것입니다. 술이란 배신자니까요. 술은 비밀이 있는 곳으로 흘러든다는 말도 있잖아요』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듯하군』 그런데 이튿날 아침, 다소 엉뚱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왕이 객실에 나가 앉아 있으려니까 뜻밖에도 마부며 하인들이 허겁지겁 왕 앞으로 달려와 말했다. 『오, 충성된 자의 임금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마구간의 말이며 당나귀들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저희들은 분명 어제 저녁에 말의 털을 빗겨 주었고, 수탕나귀에게는 여물도 듬뿍 주었습니다. 그런데 밤 사이에 그 많은 말이며 당나귀들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부마님의 백인노예들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말과 당나귀가 없어진 걸 보고 부마님의 백인노예들의 거처로 들어가 보았더니, 그 놈들도 어디론가 달아나고 한 놈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왕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아라. 일천 필이나 되는 짐승과 오백명이나 되는 노예와 하인들이 어찌 너희들도 모르게 달아날 수 있단 말이냐?』 그때까지만 해도 왕은 말과 당나귀 그리고 백인노예들이 모두 마신들이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옵니다. 곡절은 알 수 없사오나 저희들이 드린 말씀은 모두 사실이옵니다』 마부와 하인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러자 왕은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좋다. 그런 문제라면 이제 너희들 상전인 부마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라. 부마는 이제 곧 하렘에서 나올 테니까 말이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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