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연숙/하늘로 돌아간 「천사」

입력 1997-09-13 18:22수정 2009-09-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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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키, 평범한 얼굴, 잠시도 머물지 않는 동작…. 1975년 멕시코세계여성대회에서 만났던 테레사수녀는 낙태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그후 20여년간 많은 국제회의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그 힘찬 모습에 감탄했다. ▼ 사랑-나눔 평생실천 ▼ 그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찾아 하고, 가장 어려운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조금이라도 부추겨 주기 위해 그렇게 종종걸음을 쳐왔다.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는 조문사절로 급히 인도에 도착한 뒤 나는 그의 그런 삶이 죽음을 계기로 그 넉넉함과 아름다움을 한껏 펼쳐 보이고 있다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대통령도, 정치가도, 부자도 아니었다. 성공을 꿈꿀 짬도 없이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려고 소리쳤고, 가난한 사람의 굶주림을 덜어주기 위해 뛰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어느 정치가보다도, 어느 부자보다도 더 고귀하게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과 사랑속에 최고의 격식인 국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식장의 수많은 인파, 그리고 세계 구석구석에서 현장중계를 보며 장례식에 참가했을 수많은 조객들을 헤아려보며 나는 한 명구를 떠 올렸다. 『사람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만큼의 부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눠준 것만큼의 부자인 것이다』 테레사수녀는 1910년에 태어나 올해 8월26일에 87세 생일을 지냈다. 18세에 더블린에 있는 수녀원에 입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지리 교사를 하다가 교장까지 지내던 그는 38세에 인도 국적을 취득, 캘커타 거리에서 봉사생활을 시작했다. 남들은 중년에 이르러 더 편한 삶을 갈구할 때 그는 모두가 외면하는 병든 고아, 거리에 쓰러진 환자, 정신병자, 신체장애인 등을 구호하고 수용하는 일을 했다. 도움이나 칭찬을 받기는커녕,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주도하는 종교적 상황은 가톨릭수녀의 구호활동에 반감을 가질 정도였다. 그러나 종교를 달리하는 승려가 전염병으로 죽어갈 때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하며 살려낸 그의 헌신적인 봉사는 마침내 종교가 다르다고 받던 냉대를 이기고 캘커타의 어머니로, 인도의 성인으로, 그리고 이 세상의 천사로 삶을 마감케 했다. 수녀의 장례식은 절대다수인 힌두교와 이슬람교도가 다 함께 고마움과 사랑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교황청 대표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가톨릭미사가 진행됐다. ▼ 이별 아닌 배움의 자리 ▼ 인도 군의장대가 호위하는 운구행렬, 인도 대통령이 참여한 장례절차, 수많은 외국 조문대표들의 헌화, 모든 종파들의 기도로 이어진 이 장례식의 말미는 가톨릭 성직자만의 오붓한 미사로 안장돼 테레사수녀를 사랑의 선교회 본부에서 평화로이 잠들게 했다. 왜 우리는 이 자리에 온 것일까. 먼 이웃, 가까운 이웃 할 것 없이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테레사수녀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칭송하며 슬픈 이별을 고하기보다는, 그를 닮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 그를 배우기 위해, 그리고 이곳에 와 있지 않은 이들에게 이 벅찬 감동과 그의 외침, 『이 사람들을 살려 주세요』를 널리 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린이 구호활동에 쓰기 위해 노벨상 수상후의 연회를 마다했고 교황한테서 기증받은 자동차는 경매에 부쳤다. 오늘 이 자리의 그는 『장례식 비용을 아껴서 불쌍한 이에게 주라』고 외쳤을 것만 같다. 그가 누워 있는 유리관을 바라보면서 그의 명복을 빌었다. 이연숙(정무2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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