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도 변하고 있다. 가로쓰기 족보 CD롬족보 유전자족보 등 전통 관념을 깬 족보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것.
1476년 국내 최고(最古)의 족보인 안동권씨족보가 편찬된지 5백여년 만에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족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족보에는 한 시조 아래의 모든 후손을 기록한 대동보, 한 파의 족보인 파보, 본인을 중심으로 시조부터 직계존비속과 가까운 방계 혈족만 기록한 것으로 다른 족보의 기본자료가 되는 가승보 등이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이 한글세대에 맞춘 가로쓰기 족보. 광산탁씨 대동보는 전면 가로쓰기로 돼 있다. 한자 이름과 한글 이름을 나란히 적어 놓았으며 관직과 묘지 등은 한글로만 표기했다. 시조부터 36세(世)까지를 담은 이 족보는 지난 95년 발간됐다. 가로쓰기 「예수족보」를 내놓은 한국족보문화연구원 홍재덕원장은 가로쓰기 족보의 편리함을 알리는데 열심이다. 「예수족보」는 성서의 창세기에 이름이 나오는 아담부터 64세손인 예수까지를 담은 한글족보.
강릉유씨 상산김씨 등의 가승보에는 이름 옆에 사진이 들어 있다. 남양홍씨의 대동보에는 원하는 사람에 한해 주민등록번호가 실려 있으며 상산김씨의 가승보에는 결혼사진이 실려 있다.
최근 나온 족보들은 대부분 한자와 한글 이름을 함께 적고 있으며 생년월일도 「갑자생」 「을축생」 대신 서기로 쓰는 경우가 많다. 후손이 이해하고 기억하기 쉽게 족보를 만드는 노력의 일환이다.
최근 남양홍씨는 족보(대동보)를 CD롬으로 내놓았다. CD롬족보는 만들기 간단하다. 요즘에는 족보를 컴퓨터로 조판하기 때문에 디스켓의 내용을 CD에 옮기면 된다. CD롬족보는 아직까지 편리한 검색 방법이 개발되지 않아 사실상 「보관용」에 머물고 있는 것이 흠. 전의이씨 한산이씨 김해김씨 문중은 족보의 주요 내용인 시조의 묘소, 사당, 가문의 내력 등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았다.
일부 의료인들 사이에는 건강자료가 되는 「유전자 족보」가 유행하고 있다. 국립보건원 안명옥교수는 「유전자 가승보」에 조부모 외조부모와 부모의 형제자매 등 개인의 건강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관련 정보를 담아 놓았다. 가족의 병력(病歷)은 물론 생활방식과 성장환경, 좋아하는 음식 또는 편식 여부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족보는 손으로 직접 쓴 「수첩」 형태다.
차병원종합검진센터 전문의 조항준씨(가정의학과)도 유전자가승보를 만들어 놓았다.
조씨는 『유전자족보는 족보와 건강기록부를 결합한 것으로 유전병 등을 밝혀 내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만들도록 권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가 있어 일반화되지 못했고 의사들이 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족보상담소의 신영환소장은 『실향민이나 전문직 종사자가 새로운 유형의 족보를 많이 만든다』면서 『특히 가승보의 경우 만드는 사람의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형태의 족보는 대부분 한글세대에게 족보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