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리콜제도 있으나마나

  • 입력 1997년 8월 29일 20시 23분


우리나라에서 리콜제도는 여전히 있으나마나다. 작년 4월부터 리콜을 안전과 관련된 모든 공산품과 유통기한 규제가 풀린 식품으로까지 확대실시했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그중에서도 소비자의 안전과 직접 연관돼 있는 국산자동차의 국내 공식리콜은 96년 1월부터 97년 5월말까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국내 자동차메이커들이 해외에 판 차는 그 나라의 관련법에 따라 적극적인 공개리콜을 하면서 국내 판매분에 대해서는 이를 외면한 탓이다.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지난 1년반 사이 해외에서는 10건 16만 4천대의 자동차를 공개리콜했지만 국내에서는 1건의 공개리콜말고는 14건 10만3천여대에 대해 애프터 서비스 차원에서 무상점검을 해주었을 뿐이다. 수입자동차의 리콜도 실정은 비슷하다. 외국에서 결함이 발견돼 이미 리콜조치가 이뤄진 자동차가 국내에서 팔리고 있으나 리콜비율은 6.8%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리콜에 대한 제도미비, 사회적 인식부족, 생산자의 책임의식 결여와 소비자 경시풍조에서 비롯되고 있다. 리콜제도가 하루빨리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은 되풀이해서 강조할 필요가 없다. 소비자는 각종 제품 또는 서비스로부터 「안전할 권리」와 제품값에 상응하는 효용가치를 누릴 권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리콜의 활성화는 궁극적으로는 우리제품의 품질을 높여주고 대외경쟁력을 강화시켜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리콜이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지금처럼 공허한 정책의 제시만으로는 안된다. 소비자 피해에 관한 정보의 수집과 처리를 원활히 하고 관리 감독을 강화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이 있어야 한다. 품목별 리콜명령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생산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의 처벌을 보다 무겁게 해야 한다. 리콜 거부에 따른 손해가 리콜을 했을 경우보다 더 커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또한 피해구제과정에서 소비자가 어떠한 불편을 느껴서도 안된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의 입법추세인 소비자제품안전법이나 제조물책임법의 제정을 미룰 이유가 없다. 제품결함으로 소비자가 생명 신체상의 위해를 입었을 때 생산자의 고의 과실 여부에 관계없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의 유사한 피해에 대해서는 동시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법의 마련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리콜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다. 기업은 소비자 권익을 외면하고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하고 소비자는 결함제품을 우리사회에서 추방하는 소비자주권 행사에 보다 투철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