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도박꾼 사장님」풀어준 「판사님」

  • 입력 1997년 8월 22일 09시 17분


재벌급 인사들이 해외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수백만달러의 외화를 날린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곱게 보아줄 수가 없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 사장들이 어려움을 겪다 못해 『부도를 내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까지 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행태는 「매국」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법원이 이들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서울지법 형사1단독 재판부는 지난 1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3백20만달러를 날린 대전의 동양백화점 부회장 吳宗燮(오종섭·41)씨를 1억원의 보석금을 내는 조건으로 석방했다.법원은 같은 곳에서 카지노 도박으로 23만달러를 날린 석재회사 사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오씨가 3백20만달러를 빌려 도박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간중간에 도박으로 돈을 따기도 해 실제 도박으로 잃은 금액은 10만달러를 조금 넘는다』고 보석허가 이유를 설명했다. 오씨의 변호사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말이다. 오씨가 도박을 하다 돈을 땄다면 굳이 카지노측 한국인 마케팅 담당자에게 3백여만 달러나 빌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밝힌 또다른 보석허가 이유는 오씨가 수백억원대의 재산가로 그 정도의 도박규모를 감당할 수 있으며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것. 그러나 이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돈이 많은 사람은 아무렇게나 써도 괜찮다는 말인가. 법조계 인사들은 오씨의 변호사와 담당판사가 사법연수원 동기로 최근까지 법원에 함께 근무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판사와 변호사의 「특별한 관계」가 보석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 결과 재판부가 해외도박이나 외화유출을 비호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수형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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