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너무 솔직한 NTSB』

  • 입력 1997년 8월 11일 21시 05분


대한항공기 추락사고 원인을 조사중인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원인」이 가지는 폭발력 때문에 요즘 지뢰밭을 통과하는 심정으로 조사에 임하고 있다. 사고원인은 곧바로 항공사 제작사 괌공항 미연방항공국(FAA) 등 사고당사자들의 책임문제로 연결되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NTSB는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조사내용을 공개했다가 당사자들로부터 호된 항의를 받기도 했다. NTSB는 지난 8일 브리핑에서 『조종사와 관제사간 교신내용중 「긴급상황」이 없었던 점으로 미뤄 기체이상보다는 착륙과정과 관련있는 사람들의 잘못인 것 같다』고 말했다가 대한항공은 물론 우리 정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NTSB는 다음날 브리핑에서는 『아직까지는 「사람에 의한 실수」가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니다』고 한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고원인과 바로 연결시킬 수 있어 괜한 잡음만 날 수 있는 부분은 브리핑에서 아예 빼버리면 곤란을 겪지 않을텐데 NTSB가 일을 어렵게 처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NTSB는 「굴하지」 않았다. 10일 기자회견에서는 이날 조사과정에서 관제시스템 중 경보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새로 밝혀졌다며 도표까지 준비, 자세히 설명했다. 물론 경보체계 미작동 부분도 사고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벌인 정보수집단계에서 나온 수많은 「사실」 중의 일부였지만 경보시스템을 관할하고 있는 FAA로서는 상당히 아픈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NTSB는 정보공개의 원칙에 따라 당장은 다소 곤란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매일매일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거나 대형수사를 할 때마다 조사 혹은 수사상 편의라는 이름으로 손쉽게 거짓말도 하고 사실을 은폐하기도 하는 「국내 관행」에 익숙해 있는 한국기자들에게 이 점은 「신선한 충격」이다. 공종식 <사회1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