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확정한 금융개혁안에 한국은행과 은행 증권 보험감독원은 물론 재정경제원까지 일제히 반발, 과연 금융개혁이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특히 각 감독원 노조가 민주노총과 연대하여 파업불사를 선언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국민은 재경원과 한은의 다툼이 서로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밥그릇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부실대출로 국민 경제가 휘청대고 금융기관을 멍들게 한 한보사건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의 대출 외압(外壓) 못지않게 재경원과 한은 은행감독원에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관의 어느 누가 책임을 졌으며 잘못했다는 사람이 있었는가. 금융산업 낙후도 은행보다 재경원과 한은의 책임이 더 크다. 빅뱅식 금융개혁을 하지 않고는 금융산업을 살릴 수없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어려운 마당에 개혁대상이어야 할 기관이 오히려 밥그릇싸움으로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건설적인 대안(代案)을 내놓고 밤새워 토론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게 도리다.
의견이 워낙 첨예하게 갈린 사안들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지금부터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 절충하면 된다. 통화신용정책의 권한과 책임을 중앙은행에 주어 독립성을 높인 것은 일단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감독기능을 정부기관에 집중하고 금융통화위원회의장을 임기내에 해임할 수 있게 한 것을 비롯, 금융정책 권한을 지금보다 더 정부에 몰아줌으로써 관치(官治)금융의 여지가 많아졌다는 지적은 앞으로 여론수렴을 통해 보완해야 하리라고 본다.
재경원과 한은 및 각 감독원 관계자들은 국가경제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먼저 생각하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각국이 혁신적인 금융개혁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우리만 눈앞의 기득권에 얽매여서야 말이 안된다. 중앙은행과 감독기능조정 말고도 할 일이 태산이다. 금융산업을 어떻게 개편해 경쟁력을 갖출 것인지에서부터 수요자 중심의 금융시스템 구축, 경영건전화, 규제혁파 등 개혁의 본질이 뒷전에 밀려나 있으니 한심하다. 관련기관들이 정신을 못차리면 제삼의 기구를 만들어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파장(波長)이 크다해서 금융개혁을 차기정권으로 넘기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근시안적 안목이다. 다음 정권에서 추진해도 지금과 같은 반발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정부안을 토대로 관련기관은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의견을 수렴해 법안을 만들기 바란다. 국회 또한 미적거리지 말고 임시국회 소집이 늦어지면 소관 상임위에서라도 법안이 제출되는 대로 심의에 착수, 개혁법안을 연내에 통과시켜야 한다. 개혁에 실기(失機)하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