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인성교육현장/학부모 체험기]취리히 조미애씨

  • 입력 1997년 5월 19일 08시 08분


취리히 초등학생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스위스인이라도 부모 모두 스위스 태생인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아버지가 스위스인이면 어머니는 이탈리아인 체코인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심하지 않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부 스위스인들은 『외국인들이 나의 몫을 빼앗아간다』는 박탈감에 외국인들에게 적대적인 경우가 많아졌다. 아들 유진이가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 헬블링 선생님도 외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다. 어느날 유진이가 학교 끝날 시간이 안됐는데도 일찍 돌아왔다. 같은반 슈테파니라는 스위스 아이를 놀려 마음에 상처를 준 죄로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아이들끼리 장난을 하다 슈테파니가 아이들에게 약간 놀림을 받은 것이지 특별히 유진이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헬블링 선생님은 슈테파니의 말만 듣고 평소 좋지않게 보아온 유진이를 덜렁 집으로 쫓아보낸 것이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진이나 다른 아이들의 말은 듣지도 않고 유진이에게만 심한 벌을 준 것에 대해 항의했다. 내친 김에 유진이가 평소에도 「슐리츠 아우게(찢어진 눈)」「찡짱쫑(중국어 흉내로 동양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등 놀림을 받으면서도 대견스럽게 참아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헬블링 선생님이 반박하면 남편에게 연락해 학교로 당장 쫓아갈 결심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헬블링 선생님은 『미안하다. 내가 성급했다. 그리고 유진이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몰랐다. 당신이 말해줘서 유진이를 지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사과를 하지 않는가. 자기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되자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오히려 지적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담임이 믿음직스러워졌다. 헬블링 선생님은 현재 딸 지은이의 담임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