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광장/귀순자 체험기]『인사성 없다』질책에 당황

  • 입력 1997년 4월 14일 07시 59분


귀순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한에서 사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다. 전화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다짜고짜 『미경이 좀 바꿔주세요』라고 말한 나는 친구 어머니로부터 『먼저 누구인지 얘기를 해야지』라는 「훈계」를 들은 적이 있다. 이웃 어른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상냥히 인사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예의이며 그렇지 못했을 때 「버릇없다」는 무언의 질책을 받는 남한의 사회풍토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귀순직후 주위사람들로부터 남한에서는 「인사성이 밝아야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에비해 북한의 인사문화는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성 싶다. 북한에서는 연장자이면 무조건 「아바이동무」이며 「동무」 「동지」가 호칭의 전부다. 일반인들사이에 별다른 인사말은 필요 없다.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아바이」라는 반말투의 호칭으로 어른들을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친한 친구집을 들렀을 때도 친구 부모에게 먼저 인사를 한 적이 없었으며 그 자체가 당연시됐다. 주위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생활에 익숙한 탓에 처음 남한의 인사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남한학생들도 예전처럼 인사성이 밝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부분 공감하는 대목이다. 요즘 남한에서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은 참 버릇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이같은 인사성문제를 두고 하는 말인듯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인사문제는 인사를 받는 쪽도 그만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인사를 할때 인사를 받는 상대방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지나쳐버리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주 대학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나오는 길에 도서관직원들에게 『수고하십니다』고 인사를 했더니 그분은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차라리 인사하지 말고 그냥 지나칠 걸』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로에 대한 최소한도의 관심을 보이는 인사를 외면하는 현실이 자본주의사회의 심한 경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북의 인사방식이 던져주는 이런 문제점은 개선돼야하지 않을까. 〈여금주〉 ▼필자약력 △23세 △함흥 회상구역 햇빛고등중학교 졸업 △회상유치원 교양원 △가족과 함께 94년3월 귀순 △중앙대 유아교육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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