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몸통」이라 주장하는 「깃털」

  • 입력 1997년 4월 12일 20시 05분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을 증언대에 세운 12일의 국회 한보청문회 역시 답답함만 키웠다. 구속전 자신을 「깃털」에 비유하며 한보특혜대출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손」 「몸통」이 있는 것처럼 암시했던 홍씨는 이번엔 자신이 바로 몸통인 양 진술했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과 金賢哲(김현철)씨를 철저히 감쌌다. 충실한 가신(家臣)답다고 할만하나 역사앞에 진실을 밝히려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청문회에서 몇차례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과 대통령에게 고통을 준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라를 온통 혼란에 빠뜨린 한보비리의 진상에 대해 검찰 수사발표 이상의 것은 일절 말하지 않았다. 동료의원을 신문하는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위원들의 추궁이 날카롭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홍씨는 한보비리의 실체와 김현철씨 의혹의 실상에 대해 입을 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홍씨는 오히려 『증거도 없이 설(說)이나 주장만 가지고 떠드니 나라가 혼탁하고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고 신문하는 위원들을 비꼬는 듯한 말도 했다. 한보비리의 배후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느라 그런 말을 했겠지만 그의 말에는 아구가 맞지않는 부분이 많았다. 우선 「깃털」이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말이라면서도 자신이 실세(實勢)로 대접받았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청와대 살림을 맡은 총무수석비서관이 실세였다면 그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와 무관한 차관급 총무수석이 장관급 경제수석에게 특혜대출 압력행사를 요청하고 그대로 되었다면 큰 힘을 빙자하거나 등에 업지 않고서는 힘드는 일이다. 한마디로 총무수석을 한보의 몸통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현철씨 문제도 그렇다. 홍씨는 현철씨에게 사조직 운영비 등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철씨가 청와대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그렇다면 무직자인 현철씨가 어디서 돈을 조달해 사조직을 운영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또 어떻게 청와대에 현철씨측 무적(無籍)비서관이 들어가 출입증까지 받을 수 있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무작정 부인은 결국 홍씨의 진술전체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92년 대선자금문제와 관련해 야당측 특위 위원들은 집요하게 여러 의혹을 제기했지만 역시 홍씨의 답변은 『아니다』로 일관했다. 김영삼후보가 鄭泰守(정태수)씨를 만났을 가능성을 암시한 녹취록도 제시됐지만 그 진위(眞僞)를 가려내지 못했다. 한보의 배후나, 현철씨 의혹이나, 대선자금 문제나, 「홍인길 리스트」나, 무엇하나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청문회이기는 정태수씨 청문회때나 마찬가지였다. 청문회 제도와 그 운영 방식의 개선을 정말 깊이있게 생각해 볼 때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