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지지입장을 밝힘에 따라 북한의 아시아개발은행(ADB)가입이 실현단계에 이른 것은 남북한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다. ADB가 회원국에 지원하는 개발자금은 연리 1%에 상환기간 40년의 더없이 유리한 조건이다. 우리는 북한이 이 자금을 활용해 도탄(塗炭)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국제화의 시대조류에 합류하기를 진심으로 권유한다.
북한은 그동안 이른바 김일성 주체사상 아래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을 고집해 왔다. 그러나 자력에 의한 경제건설은 허구(虛構)임이 증명되고 있다. 무한경쟁의 국제화시대에 살아남는 전략으로서 북한식 폐쇄경제체제는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것이다. 오죽하면 김일성 주체사상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黃長燁(황장엽) 전 노동당비서가 북의 체제에 한계를 느끼고 망명을 선택했겠는가. 북한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치 외교 경제 사회에 걸쳐 높게 쌓은 장벽을 스스로 헐고 개방화의 국제무대로 나오는 것 뿐이다.
ADB는 아시아지역 국가의 공동발전을 돕기 위해 설립된 국제금융기구다. 이 기구에 가입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관행을 지키겠다는 약속의 의미가 있다. 북한이 ADB에 가입한다면 정치 외교적인 이해를 앞세워 국제간 합의를 빈번하게 뒤집는 작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특히 ADB차관은 후진국의 성장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원되는 자금이다. 북한이 ADB차관으로 곡물이나 들여다 눈앞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ADB가입을 신청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북한은 정치적 계산을 버리고 순수한 자세로 ADB의 성실한 회원국이 될 것을 먼저 다짐해야 한다.
북한이 ADB회원국이 되어 차관지원을 받게 된다면 남한과의 경제교류가 불가피해질 것이다. ADB차관의 대(對)북한 공여를 결정하고 사업의 타당성심사를 거쳐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이사국으로서 또는 경쟁입찰자로서 참여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사업이 한국기업에 낙찰된다면 사업추진기간 남한의 인력과 물자의 북한송출이 필연적으로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북한은 정치적 이유로 남한을 기피할 게 아니라 바람직한 협력자로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남한은 지금 개발단계를 지나 산업구조를 높여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집약형 산업시설을 후발 개도국에 이양하고 있다. 그 설비가 다른 나라가 아닌 북한에 옮겨진다면 그간의 경험과 기술을 북한에 전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남북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남한이 지금 개도국에 이양하는 설비는 경제의 발전단계로 보아 북한에 유용한 것들이다. 북한의 ADB가입이 북한의 경제회생과 남북간 경제교류 확대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