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지난 수년간 반도체 호경기와 엔고 현상에 힘입어 비교적 순탄한 발전을 보여왔다.
그러나 96년에 들어와 경기가 하강국면에 빠져들고 반도체가격 폭락과 엔저 현상 등 대외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성장률은 둔화되고 국제수지는 크게 악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노동법 기습통과에 따른 노동 정국의 전개, 한보 삼미의 도산, 김현철 사건 등 경제불안과 정치불안이 겹치면서 우리는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감과 자신감마저 잃고 표류하고 있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여기서 주저앉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를 가져온다는 신념을 갖고 이 경제난국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경제안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성장과 경제안정 간에 상반관계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경제성장이 급격히 둔화된 상황에서 실업률증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경제안정은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이며 성장과 경제안정간의 상반관계는 없다. 특히 건전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안정으로 경제의 거품을 빼야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는 국제수지 적자를 줄이는 것이다. 최근 경상수지 적자폭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외채관리문제가 대두되고 환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국제수지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제안정화 정책을 택하면서 과소비를 억제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를 한다면 결국 수입이 크게 늘어나 국제수지가 악화되기 때문이다.
환율은 우리의 가격경쟁력을 반영하여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들어 원화가 빠르게 평가절하된 것이 사실이지만 원화의 평가절하 폭은 일본 엔화의 절하폭에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96년 원화의 연평균 대미(對美) 환율과 대일(對日) 환율은 93년 각각의 연평균 환율 수준과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이 기간중 우리의 물가상승률은 이들 국가보다 높았다. 한편 환투기와 외환보유고 감소는 자본자유화의 폭을 넓히고 속도를 조정함으로써 대처할 수 있다.
과거 수년간 우리는 선진경제 진입을 위한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구했지만 이에 필요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 부작용이 크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여 자율적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정부는 규제와 개입을 하루 빨리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지금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적기다.
▼한보-삼미 도산의 교훈
최근 한보와 삼미 도산은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더 이상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지탱될 수 없다는 시장경제의 교훈을 준다. 반면 30년대 대공황은 자율적 시장조절 기능은 경우에 따라 실패할 수 있고 기업도산 도미노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시장실패의 교훈을 주기도 한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은 그것이 경제전반에 끼치는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금융제도의 안정성 자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확고한 책임을 지면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정치 경제의 구심점이 크게 흔들리면서 과연 누구의 책임 아래 이와 같은 자율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우리 모두가 손을 놓고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면서 이를 자율적 구조조정이라고 합리화한다면 우리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표류할 것이다. 정치적 기대가 땅에 떨어지더라도 우리 국민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경제난국을 극복하고 구조조정을 도모할 때다.
김인준<서울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