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정미숙/아파트단지 공터,아들과함께 텃밭 일궈

  • 입력 1997년 3월 15일 08시 09분


남녘의 꽃소식에 이어 옷깃으로 스며드는 차갑지 않은 바람을 받으며 봄이 성큼 다가섰음을 느낀다.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난 가을부터 얼마간의 씨앗을 간수해 왔기에 더욱 봄을 기다려왔다. 지난해 아들과 함께 아파트단지내 자그마한 공터를 텃밭으로 일궜다. 거기에서 거둬들인 옥수수 씨앗, 이웃집 할머니가 이사하면서 덜어주고 간 접시꽃 씨앗, 정열적인 태양빛에 눈이 부실 정도로 요염한 자태를 뽐낼 해바리기 씨앗과 완두콩 등등. 마음은 어느새 계절을 앞질러 손바닥만한 텃밭을 향한다. 깻잎이며 상추 고추는 잘 가꾸어 이웃과 나누어 먹고 밭가로 빙 둘러 옥수수를 심어놓으면 그 잎 사이로 바람도 쉬어가겠지. 고추는 가을 빛이 여물도록 빨갛게 익혀보고 고향집 텃밭이 느껴지도록 울타리를 매어 울섶 아래 봉숭아를 심으면 올여름 딸아이 손톱을 빨갛게 물들여 줄수 있겠지. 또 울타리를 타고 쭉쭉 뻗어나갈 여주덩굴의 탐스러운 열매는 얼마나 멋질까. 요즘 부쩍 씨앗봉지를 열어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이 작은 씨앗들이 봄 여름내 푸른 생명으로 삭막한 아파트 숲의 한 귀퉁이나마 아름답게 장식하겠지. 날마다 몇차례씩 베란다 문을 열고 혹시 봄비라도 촉촉히 내려주지 않을까 내다보곤 한다. 이번 일요일엔 밭을 갈아 씨앗을 뿌릴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정미숙 (서울 마포구 중동 청구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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