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조동옥/취업에 실패한 제자에게

  • 입력 1997년 3월 12일 08시 04분


김군, 내가 자네를 처음 대하게 된지도 어언 7년이 돼 가는군. 7년전 이맘 때 아직 고교생 티를 벗지 못한 모습으로 학과 사무실에서 처음 본 것 같은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네. 김군의 대학 학창 시절을 회상해 보면 누구 보다도 성실했고 열심히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하네. 자네가 군대에 다녀와서 씩씩한 모습으로 학업에 몰두하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는지 모른다네. 그러던 자네가 이번 취업에 실패하여 졸업식 때 풀이 죽은 표정이더니 계속 도서관에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네. 자네 보다 못한 친구들도 좋은 곳에 취업한 경우가 많은데…. 그러나 김군, 너무 기죽지 말게. 다시 한번 해보게나.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자네 요트 타 보았나. 요트는 바람이 없으면 가질 못하네. 바람을 잘 이용해야 요트를 탈 수 있는 걸세. 지금 자네는 인생에 있어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셈인데 바다에 있는 배도 바람을 잘 이용하면 항구에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네. 그 바람이 순풍이 되느냐, 역풍이 되느냐는 오로지 자네 마음 가짐에 달려있네. 또한 지금 김군이 겪는 마음의 고통, 자존심의 붕괴 등은 훗날 자네에게 대단히 좋은 약이 될 것이라고 믿네. 쓴 약이 몸에 좋다는 거 모르나. 물의 흐름을 가만히 보게. 물은 부족한 곳은 메우고 바위와 같은 장애물은 감싸돌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어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지만 결국은 넓고 깊은 바다에 닿아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않는가. 자네가 취업에 실패한 것은 물과 같은 낮고 넓고 부드러움을 익히게 하려는 하나님의 큰 뜻이 숨겨져있기 때문이라고 믿네. 김군, 다시 해보게. 그리고 온유와 겸손을 철저히 익히게. 곧 넓고 깊은 바다로 흘러가게 될테니까 말일세. 조동욱(서원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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