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을 쓸 수 있는 나이가 꼭 정해져 있는건 아니다. 자신이 겪은 독특한 체험과 사실을 기술하고 그것이 만인의 공감을 얻는다면 나이가 문제될 수 없다. 다만 어떤 독특한 체험도 그것을 삶의 성찰(省察), 고뇌와 연결시켜 일반화하고 읽는 이의 심금을 울려야만 비로소 자서전으로서의 생명을 갖게 된다. 평생 수십권의 저서를 낸 사람들도 자서전 얘기를 꺼내면 『나 정도가 어찌 감히』라며 손을 내젓는 것도 그 이유다
▼1년반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차남 賢哲(현철)씨가 자서전 형식의 에세이집을 펴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통령의 아들이란 점 외에 특이할 것도 없는 그가 30대에 벌써 「자전적 에세이」를 내고 나름대로 정치 이면(裏面)을 밝힐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인지 의아해 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악성소문」에 대한 해명형식으로 썼다는 항변조의 그런 책을 누가 얼마나 사서 볼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그의 책은 지금까지 무려 6만권이나 「팔린」것으로 집계됐다. 대기업 총수들이 회사를 세워 키우기까지 자신의 역할을 기록한 책들이 수십만권씩 팔렸다지만 상당부분은 기업측이 의도적으로 판매부수를 늘리려 사재기했다는 얘기가 있었던 만큼 이런 판매실적은 놀라웠다. 그런데 이번 한보사태가 그 실상을 밝혀줬다. 한보만 해도 현철씨 책을 무려 1만권이 넘게 사가지고 있었고 몇몇 다른 기업도 같은 일을 했다는 보도다
▼책을 사놓은 것이 들통나자 한보는 이를 전량 소각처분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몇천만원씩 주고 산 책을 태워 없애야 했는지 궁금하고 검찰은 왜 이런 사실을 적극 조사 않는지 의심스럽다. 악성소문에 지지 않고 싸우겠다는 현철씨가 이 문제에 대해 입다무는 것도 이상하다. 30대에 자전적 에세이를 쓸 정도의 용기로 현철씨가 모든 일에 대해 직접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