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받은 정치인 스스로 밝혀라

  • 입력 1997년 2월 5일 20시 13분


한보의혹을 둘러싼 정치권의 거액수수설은 마침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것도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총재의 핵심 측근인 權魯甲(권노갑)의원이 한보로부터 거액을 받았다고 시인했으니 충격이다. 여기에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신한국당 洪仁吉(홍인길)의원의 거액수수설이 겹쳤다. 한보사태의 불길은 여야 심장부로 번지고 있다. 권의원은 5억원 수수설이 제기되자 세차례에 걸쳐 1억5,6천만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서둘러 시인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시인을 자발적인 양심선언으로 보기는 어렵다. 언론의 구체적인 보도가 없었던들 과연 시인을 했겠는지 의문이다. 얼마전 야당의 「3인방」연루설이 나왔을 때도 그는 『여권의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일축했었다. 그런 그가 조건없이 받은 돈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93년2월 그가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을 만나 처음 5천만원을 받았을 때 『수서사건 때 누를 끼쳐 죄송하다』며 돈을 주었다는 권의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건없는 정치자금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례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검찰은 권의원을 곧 소환키로 했다니 정말 무슨 돈이었는지, 어디에 썼는지,받은 돈 더 없는지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 김총재도 좀더 치밀하게 측근을 챙겨보았어야 했다. 여권이 여야의원 연루설을 들고 나오자 그는 『야당까지 끼워 물타기를 하려 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런데 돈의 성격이야 어떻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측근이 거액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기에 이르렀으니 그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하게 되었다. 홍의원의 경우도 7억원 수수설이 구체적으로 제기되자 전면 부인하고 나섰지만 파장은 심상치 않다. 홍의원이 누구인가. 여권에서도 실세중의 실세다. 본인의 부인과는 달리 거액수수설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다. 홍의원은 결백을 주장하면서 검찰이 소환한다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검찰은 성역없는 수사를 다짐한 만큼 홍의원을 빨리 불러 진위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여야 정치인들에게 강력히 권고한다. 한보로부터 돈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건 자진해서 밝히라는 것이다. 떡값이건 정치자금이건, 외압을 넣었건 안넣었건, 진실을 털어놓기 바란다. 이번에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감정으로 보나 검찰의 수사강도로 보나 언젠가는 들통이 나게 돼 있다. 그럴 경우 개인의 망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태수회장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가 불신받고 있는 정치의 위기다. 이럴 때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정직과 진실이다. 스스로 속죄하는 심경으로 진실을 털어놔야 한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 정치의 길로 나선 사람들이라면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은 지켜야 한다. 더 이상 정치생명에 연연하여 치사한 거짓말로 양심을 팔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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