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축구협회장 정몽준씨 『스포츠외교 국익 최우선』

  • 입력 1997년 1월 23일 20시 34분


[대담〓李鍾世체육부장] 최근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재선된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부회장(46)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난 94년부터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스포츠 외교를 펼친 끝에 지난해 5월 2002년 월드컵을 우리 마당으로 끌어왔지만 더 크고 힘든 잔칫상을 차리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23일 아침 조선호텔에서 정회장을 만났다. 오완건 협회 부회장과 김정남 전무를 대동한 그는 지난 4년동안 축구협회장으로서 느꼈던 세계 각국의 뜨거운 축구열기로 운을 뗐다. 그는 『월드컵에 대한 그동안의 관심이 라이벌 일본과의 유치경쟁에 치우쳐 있었지만 이제는 월드컵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중요한 대회인지 냉철하게 고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2002년 월드컵 준비를 위한 원년입니다. 아직 조직위원회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올해 꼭 해야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무엇보다 시설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현재 경기장은 물론 연습장도 크게 부족한 실정입니다. 특히 잠실주경기장은 관중석과 운동장이 너무 멀기 때문에 경기를 치르기 힘듭니다. 서귀포 강릉 수원 등이 전용구장을 건립하겠다고는 하지만 6만3천석 이상의 경기장에서 개회식을 치러야 한다는 FIFA규정이 있기 때문에 인구가 적은 이들 지역에 그런 큰 경기장을 지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개회식 새 운동장서』▼ 그는 사견임을 전제, 경관이 좋은 과천 정도에 개회식을 치를 수 있는 전용구장이 있다면 서울과의 거리도 가깝고 경마장 주차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국내 16개 도시가 월드컵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언제쯤 어떻게 결정될 것으로 보십니까.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개최 도시가 모두 10개이고 일본도 지난해말 15개 후보도시중 10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종결정은 관례적으로 월드컵이 열리기 4년전 FIFA조사단이 개최국을 방문해 유치 희망도시의 합격여부를 판정해왔기 때문에 내년 봄이나 되어야 나올 겁니다』 ―2002년 월드컵에 북한이 참여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모든 것은 북한 하기에 달렸습니다. 북한이 아직껏 고수하고 있는 적화 통일 야욕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편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월드컵 개최로 얻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면…. 『스페인이 지난 82년 월드컵을 개최할때 1인당 국민소득이 5천달러가 못됐고 언어도 4개로 갈려 있을 만큼 민족갈등의 골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이후 이러한 갈등이 크게 해소됐을뿐 아니라 국민소득도 3배나 늘어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도 스페인처럼 지역감정의 골을 메우고 모든 국민이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국내쪽 얘기로 돌아가보지요. 지난 15일 4년임기의 회장으로 재선됐습니다. 「축구발전을 위한 축구인의 모임」에서 허승표 전부회장을 추천했고 허후보의 출마 배경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신임 회장으로서 앞으로 포부를 밝힌다면…. 『우선 사회 각계 각층의 덕망있는 인사들로 집행부를 구성하는게 중요하겠지요. 또 그동안 나온 여러 목소리들을 듣는 심포지엄을 많이 개최할 계획입니다. 의무분과위원회와 유소년발전위원회 등도 신설하겠습니다. 여러 다른 목소리들을 수렴하고 포용해 나가는 것이 축구협회장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음해성 외풍에 시달려▼ 2002년 월드컵 조직위 부위원장도 겸하고 있는 정회장은 이번 축구협회 회장 경선에서 22대3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축구인들의 선거에 뜻하지 않은 「음해성 외풍」이 불어 닥쳐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는 또 한국의 스포츠 외교가 국익을 전제로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어 지난해 월드컵을 유치하면서도 애로가 컸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벨란제 FIFA회장이 98년 월드컵이 끝난 뒤 물러날 것으로 보이는데 회장직에 도전할 의향은 없습니까. 『당분간은 없습니다. 차기 회장은 레나르트 요한슨 유럽축구연맹회장이 유력하고 그 다음은 아프리카연맹 하야투 회장이 출마할 계획인 것으로 압니다. 2002년 총회가 한국에서 열려 출마를 한다면 유리할수도 있지만 유치과정에서 우리를 도와 주었던 하야투 회장에 대한 도리라고 볼수 없겠지요』 〈정리〓李 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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