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65)

  • 입력 1997년 1월 8일 20시 18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55〉 다리를 저는 아름다운 젊은이는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풀이 죽은 노파의 얼굴을 보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이 불안해져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됐어요?」 그러자 노파가 말했습니다. 「오 도련님, 제가 어떻게 말을 꺼내었던가 하는 건 묻지 말아주십시오. 그것까지 이야기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질테니까요. 어쨌든 저는 그 처녀에게 도련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처녀는 다짜고짜 큰 소리로 욕을 하였습니다. 이 재수없는 마귀할멈같으니라고, 입을 닥치지 않으면, 그 따위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 혼을 내 줄테다, 하고 말입니다. 물론 한번 더 떠보기야 하겠지만, 일은 벽두부터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말을 듣자 나는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문병을 온 이웃 사람들도 이젠 내 수명도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삼일이 지나자 노파는 다시 찾아와 내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였습니다. 「우리 귀여운 바람둥이 도련님, 기쁜 소식을 가져왔으니 상을 주셔야 됩니다」 이 말을 듣자 나는 번쩍 정신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할멈이 원하는 건 뭐든지 주겠어」 내가 이렇게 소리치자 노파는 씽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말이요, 다만 우리 바람둥이 도련님이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해서 당당한 모습으로 바람을 피우러 가는 모습을 보는 것 뿐이랍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처녀가 아니고는 어떤 여자하고도 그런 짓을 할 수 없다는 건 유모도 알고 있잖아요」 「알고 말고요. 이 할미가 누굽니까? 이 할미만 믿으면 된다고 했잖아요」 노파의 이 말에 나는 한가닥 희망을 걸고 그녀가 할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노파는 잠시 후 말했습니다. 「어제 저는 다시 그 처녀에게로 갔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처녀를 꼬드겨볼 생각으로 말이에요. 그 집에서 저는 몹시 슬픈 얼굴로, 눈이 빨갛게 되어 울고 있었습니다. 저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그 처녀는, 할머니 왜 그러세요, 아주 슬퍼보이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지요. 아씨, 나는 지금 아씨를 너무나 사모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한 착한 젊은이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답니다, 하고 말예요. 그랬더니 그 처녀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오랜 뒤에서야 처녀는 물었답니다. 할머니가 말하는 그 분은 대체 누구지요,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말했답니다. 오, 아씨. 그 분으로 말하면 나에게는 친아들처럼 귀엽고 소중한 분이랍니다. 얼마전 일입니다만, 아씨가 창가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을 때 그분은 아씨의 아리따운 얼굴과 손목을 보고 말았답니다. 그것이 화근이었답니다. 그 분은 그만 아씨를 너무나 깊이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처녀는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라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녀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는 게 확실했습니다」 <글 :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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