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안토니아스 라인」…살맛나는 「여자들 세상」

입력 1997-01-08 20:18수정 2009-09-27 08:17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朴元在 기자」 11일 개봉되는 네덜란드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마린 고리스 감독)은 4대에 걸친 한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세대간 대물림과 남녀간 짝짓기의 소중함을 전하는 외화. 특이한 것은 그 중심에 남성이 아닌 여성이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안토니아 집안의 가계(家系)」 정도로 번역됨직한 이 영화의 핵심인물은 철저하게 여자만으로 구성돼 있다. 주인공 안토니아(빌레케 반 아메루이)와 딸 다니엘, 손녀 테레사, 증손녀 사라가 각자의 인생을 꾸려가는 동안 뭇남성들은 늘 이들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2차세계대전 직후의 네덜란드 농촌.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찾은 안토니아가 딸과 함께 정착하면서 어른과 아이, 여자와 남자를 아우르는 색다른 공동체의 삶이 펼쳐진다. 억척스런 생활력과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지닌 안토니아의 곁에는 갖가지 사연을 가진 남성들이 모여든다. 바보 루니립스는 자신에게 모성애를 보여준 안토니아의 충실한 일꾼을 자청하고 그녀를 연모하는 홀아비 농부 바스는 청혼이 거절당한 뒤에도 평생친구의 역할에 만족한다. 안토니아 집안의 여자들이 한 남자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도 꽤 흥미롭다. 불현듯 아이를 낳고 싶어진 다니엘이 머리좋고 잘생긴 남자를 물색해 임신한 뒤 냉정하게 아이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는 식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21세기 미래가족의 형태를 조심스럽게 제시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초보적인 수준의 특수효과 기법을 사용, 군데군데 동화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것도 애교스럽게 봐줄만한 대목. 죽은 할머니가 관에서 벌떡 일어나 추모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이 순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익살스런 윙크를 던진다. 96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안토니아스 라인」은 이처럼 마니아(영화광)를 염두에 둔 컬트영화와 대중취향의 상업영화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얘기를 풀어간다. 페미니즘 계열의 작품으로 분류되지만 남성과 여성간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전혀 과격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생에 대한 연륜이 묻어날 정도로 시야가 넓다는 평. 감독은 『살맛나는 세상을 가꾸어 가는데는 여성의 모성애가 제격』이라는 주장을 펴면서도 남성의 역할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백발이 성성한 안토니아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면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최선을 다해 인생을 산 사람이라면 아름답게 죽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