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45)

  • 입력 1996년 12월 17일 20시 00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19〉 김교수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투서 내용에 그런 것도 있다고 들었어요. 강선생이 모 대학 교수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그 말 들으니까 뜨끔하더라고요. 내 입에서 무심코 나온 말이 누구 귀에 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란 게 돌다보면 불어나는 거잖아요』 그리고는 변명 비슷하게 덧붙인다. 『하긴 나 혼자 제 발이 저려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아무래도 그 소문이 나한테서 시작되진 않은 것 같거든요. 나는 그 말을 박지영 선생한테밖에 한 적이 없으니까. 강선생하고 친하니까 알고 있으려니 하고 말했더니 처음 듣는다고 깜짝 놀라데요? 그 박선생 보기보다 참 끈질겨. 나는 그냥 모대학 교수라고만 했는데 어찌나 꼬치꼬치 캐묻던지』 『그게 언제인데요?』 나도 모르게 이맛살이 모아진다. 『종강하기 전이니까 한달은 안 됐고, 참, 박선생이 교양과에 낙하산 인사가 있을지 모른다고 하소연하던데, 그날 아니었던가?』 박지영이 내게도 그런 말을 했었다. …그렇게 느긋할 일 아녜요. 우리 둘 중 하나를 밀어내려는 거라구요. 부서 소식을 전하면서 그녀가 했던 말도 생각난다. …그래도 상대 남자 이름 같은 거 안 밝힌 거 보면 투서 보낸 사람이 아주 무식한 사람은 아닌가봐요. 그때도 의아한 마음은 없지 않았다. 교수회의가 열리기도 전인데 어떻게 투서에 상대 남자의 이름이 안 밝혀진 것까지 자세히 알았을까. 하지만 졸렬한 의심을 하기에는 박지영은 내게 너무 친밀하게 굴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행히 본관에 닿았으므로 나는 김교수와 헤어질 수 있었다. 빨리 혼자가 되고 싶다. 싸늘한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의자에 털썩 몸을 던진다. 전기난로의 플러그를 끼울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다. 박지영의 말투가 귓가에 파고든다. …사생활에 문제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죠. 더 생각하기가 싫다. 춥다. 그러나 나는 난로를 켜는 대신 그냥 연구실을 나와 버린다. 조교에게 성적표를 맡기고 서둘러 차로 돌아가는데 아주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덥석 잡더니 뒤돌아 볼 틈도 주지 않고 사라진다.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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