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36)

  • 입력 1996년 12월 7일 20시 11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26〉 친절한 주인은 노예를 시켜 그 젊은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모두 갖다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노예는 물을 비롯하여 비누와 잿물 따위를 가지고 왔고 젊은 사내는 자신이 말한 대로 비누로 사십 번, 잿물로 사십 번 그리고 맑은 물로 사십 번, 도합 백이십 번에 걸쳐 손을 씻었습니다.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더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아니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시추를 움켜잡더니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저희들은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움켜쥔 음식이 떨릴 만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손에는 엄지손가락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엄지손가락은 어떻게 된 거요? 신께서 그렇게 만드신 겁니까, 아니면 다치기라도 하셨습니까?』 좌중에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사내는 몹시 난처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저의 왼손도 보여드리지요. 엄지손가락이 없기로는 왼손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렇게 말하며 사내는 왼손을 내어밀었는데 과연 그 손에도 엄지가 잘려나가고 없었습니다. 의아해하는 표정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젊은이는 계속했습니다. 『내친김에 저의 두 발도 보여드리지요. 저의 두 발도 사정은 예사롭지가 않으니까요』 이렇게 말한 젊은이는 자신의 두 발을 사람들 앞에 내보였는데, 그의 두 발에도 엄지발가락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좌중의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군요. 어떻게 하여 당신의 엄지손가락들과 엄지발가락들이 잘려나가게 되었는지, 왜 카민 시추를 먹기 전과 먹고 난 후 백이십 번씩이나 손을 씻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들려 주세요. 거기에는 필시 내력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자 젊은이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정히 여러분들이 그 내력을 듣고 싶으시다면 말씀 드리지요』 젊은이가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은 모두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젊은이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의 부친은 상인의 우두머리로서 교주 하룬 알 라시드 시절에는 바그다드에서도 제일가는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워낙 술을 좋아하셨던 데다가 류트는 물론 온갖 풍악을 즐겼기 때문에 돌아가셨을 때는 저에게 아무것도 남겨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코란 독경을 마치고, 이별을 슬퍼한 뒤 부친이 경영하던 상점으로 가보니 빚은 산더미 같고 이렇다할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일단 채권자들과 상의하여 지불 기한을 연기했습니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장사를 하여 매주 얼마씩을 갚아나갔습니다. 이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덕분에 부친이 남긴 빚을 겨우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빚을 모두 청산하고 나자 저의 밑천도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게에 앉아 있으려니까 젊은 여자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정말이지 그런 미인을 저는 난생 처음 보았습니다』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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