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미국은 日전범 입국금지를 시키는데…

  • 입력 1996년 12월 5일 20시 12분


▼82년 일제(日帝)관동군 제731부대의 인간생체실험 진상을 폭로한 「악마의 포식」이 출간되자 세계는 경악했다. 산 사람을 원심분리기에 넣어 돌려 피를 짜 죽이는 실험, 밀폐된 방 공기를 서서히 빼내면서 인체가 어떻게 파괴 분리되는지 지켜보는 실험, 사람에게 말이나 원숭이 피 또는 각종 세균을 주사해 시간대별 변이상황을 기록한 실험…. 도저히 인간이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당시 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부대장 이시이 시로중장의 이름을 따 이시이부대로 알려진 이 세균전부대에 희생된 사람은 줄잡아 3천여명. 주로 한국인 항일투사, 중국 소련 미국인 포로였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죽어간 이들은 이름도 없었다. 그저 껍질벗긴 통나무란 뜻의 일본어 마루타(丸太)로 통칭됐다. 제국주의 군대의 노리개로 끌려가 「살아 남았어도 살지 못한」 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일제에 모든 것을 앗긴 피해자들이다 ▼놀라운 것은 희생자들이 처절하게 짓밟힌 상황은 알려졌지만 가해자들은 제대로 단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美蘇(미소)간 냉전으로 공식 처리한 전범 외에 전쟁중 가혹행위의 진상규명이나 가담자 색출 처벌을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그뒤 일본 정부도 생체실험 진상이 폭로됐을 때 『인도적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말만 했을 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우물우물 넘어갔다 ▼최근 미국 법무부가 일제의 잔혹행위 관련 전범 16명에 대해 종전(終戰)51년만에 입국금지조치를 내린 것은 매우 교훈적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해치는 범죄를 단죄하는데는 시한이 없음을 뒤늦게나마 보여준 것이다. 특히 이번 조치에 재미한국인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도 눈물겹다. 그런 점에서 일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우리 정부는 그동안 과연 무엇을 해왔는지 반성할 대목이 없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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