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198)

  • 입력 1996년 10월 28일 20시 29분


제5화 철 없는 사랑 〈37〉 나무에서 내려오자 교주는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안에 들어가 저 사람들과 어울려야겠어. 저 여자가 내 눈앞에서 노래하는 걸 듣고 싶으니까 말이야』 왕이 이렇게 말하자 쟈아파르는 난색을 띠며 말했다. 『오, 충성된 자의 임금님, 만일 임금님께서 안에 들어가시면 저 사람들은 몹시 송구스러워할 것입니다. 특히 이브라힘 노인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죽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딴은 그렇겠군. 그렇다면 무슨 재주를 부려 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하면 내 신분을 들키지 않고도 한패에 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막상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하며 두 사람은 무심결에 티그리스강쪽으로 발을 옮겨 놓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누각 창문 아래 강에서 불법으로 고기를 잡고 있는 카림이라 불리는 어부를 만났다. 『여보게, 카림!』 교주는 어부를 향해 소리쳐 불렀다. 어부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았는데, 강기슭에는 뜻밖에도 교주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카림은 부들부들 떨면서 외쳤다. 『이를 어쩌나? 충성된 자의 임금님, 저는 법도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원체 가난한데다 밥 달라고 우는 아이들이 많아서 그만 보시는 바와 같은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교주는 말했다. 『좋다. 눈감아 주마. 그런데 나를 위해 그물을 한번 쳐줄 수 없겠나?』 『그렇게 하다마다요』 어부는 기뻐하며 강기슭으로 가 그물을 던졌다. 그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끌어올리니 그물 안에는 온갖 고기들이 가득히 걸려 있었다. 교주는 몹시 만족해하며 말했다. 『좋아. 그리고 카림, 자네 옷도 좀 벗어다오』 옷을 벗으라는 교주의 말에 어부는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교주의 표정을 살폈다. 교주가 몹시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카림은 서둘러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가 득실거리는 누덕누덕 기운 저고리를 벗고 닥치는대로 누더기를 기워서 만든 두건을 벗었다. 그것들은 삼 년째 벗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부가 옷을 다 벗었을 때 교주도 알렉산드리아 비단이나 바르바크 비단으로 만든 속곳 두 벌과 통이 넓은 바지, 소매가 긴 덧저고리 따위를 벗어서는 어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자, 이것을 입게』 그리고 자기 자신은 어부가 벗어놓은 그 더러운 저고리를 입고 때묻은 두건을 썼다. 그리고 두건의 한 끝을 입가리개로 삼아 얼굴에 걸쳤다. 『자! 이제 돌아가거라』 너무나 감동한 어부는 교주의 발에 입맞추며 이런 즉흥시를 불렀다. 임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으니, 처량한 가난에서 구해졌네. 내 목숨 붙어 있는 한 감사를 바치고, 내 뼈는 무덤 속에서 임을 칭송하리. <글 :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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