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나이트(193)

  • 입력 1996년 10월 23일 20시 50분


제5화 철없는 사랑〈32〉 그때 누르 알 딘은 이브라힘 노인에게 좀 더 가까이 오라고 권했고, 그제서야 노 인은 두 사람 곁으로 와 앉았다. 『자, 한 잔 들어보세요!』 누르 알 딘은 잔에 술을 따라 노인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냐! 나는 알라의 힘을 빌려 금주하고 있는 걸. 지난 십삼년, 나는 한번도 그 런 짓을 한 적이 없는 걸』 노인이 이렇게 말하자 누르 알 딘은 아니스 알 쟈리스와 빠르게 눈짓을 교환했다. 그러더니 그는 들고 있던 술잔을 단숨에 비워버리고 몹시 취한 듯이 바닥에 쓰러졌 다. 노인이 곁에 앉아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말이다. 그러자 아니스 알 쟈리스는 힐끔 노인을 보며 말했다. 『이브라힘 영감님, 제 남편이 하는 꼴을 좀 보세요』 『왜 이러지요?』 『저이는 늘 이렇답니다. 잠시 함께 술을 마시다가는 저를 혼자 남겨두고 자기만 자버린답니다. 그래서 술잔을 돌리며 노래를 들려드릴 상대도 없답니다』 『그거 안됐군!』 노인은 그 애교 있는 아니스 알 쟈리스에게 마음이 끌려 이렇게 말했다. 『제 소원이니 제발 이 잔을 받아주세요. 이 울적한 마음을 풀려는 저의 청을 물 리치지 말아주세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노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팔을 뻗어 술잔을 받아들더니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러자 여자는 두번째 잔에 술을 따라 촛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 주인나리. 아직도 한 잔 남아 있습니다』 『안돼요! 이젠 더 이상 마실 수 없답니다』 그러자 아니스 알 쟈리스는 몹시 슬퍼하는 표정을 한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노인도 마음이 약해져서 다시 한잔을 마셔버렸다. 그러자 아니스 알 쟈 리스는 세번째 잔에 술을 따랐고 노인은 이제 그다지 망설이지 않고 받아들었다. 그 러나 그가 막 그것을 마시려고 하는 순간 누르 알 딘은 몸을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 나 앉으며 말했다. 『호, 이거 어찌 된 일입니까, 이브라힘 노인장? 조금 전에 제가 권했을 때는 그 토록 거절하더니』 그러자 노인은 좀 민망스러운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알라께 맹세코 이건 내 죄가 아니오. 이분이 억지로 권해서 마셨을 뿐이랍니다 』 누르 알 딘도 웃었다. 일동은 다시 자리를 잡고 술을 나누기 시작했다. 주거니 받거니 한참 술잔이 돌고 났을 때 아니스 알 쟈리스는 남편을 향해 쌩긋 웃으며 속삭였다. 『여보, 노인님께 술잔을 권하지 마세요. 좀 놀려보게요』 그리고 그녀는 남편의 잔에만 술을 따르고, 남편은 아내의 잔에만 술을 따를 뿐 아무도 노인의 잔에는 술을 따르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지 않자 마침내 노인은 좀 서운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무슨 야속한 짓이오. 알라시여, 자기들만 술잔을 붙잡고 남에겐 돌릴 줄 모 르는 이 술통들을 저주하소서! 여보, 젊은이. 왜 나한테는 따라주지 않소?』 그러자 두 사람은 허리를 잡고 웃었다.<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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