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나이트(190)

  • 입력 1996년 10월 20일 20시 23분


제5화 철없는 사랑〈29〉 정원지기 노인은 종려나무 잎 하나를 꺾어 들고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오냐! 앞으로 이 근처에 오는 자가 없도록 이 둘을 호되게 매질해 줘야겠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내리치려고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노인은 마음을 고쳐 먹으며 말했다. 『이봐, 이브라힘! 너는 사정도 물어보지 않고 남을 때릴 셈인가? 길 가는 나그네 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여길 들어왔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때린다는 게 과 연 옳은 일인가? 우선 베일을 좀 벗겨보자』 이렇게 말하고 노인은 두 젊은이가 함께 쓰고 있는 베일을 벗겨보았다. 베일을 벗 겨본 노인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니, 잠들어 있는 두 젊은이는 흡사 낙원의 소년 소녀처럼 아름다웠던 것이다. 『오! 참 예쁜 내외로군. 이렇게 어여쁜 내외는 꽃으로도 때릴 수가 없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노인은 들고 있던 종려나무 잎을 저만치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손을 맞잡은 채 잠들어 있는 그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다 시 베일을 씌워주었다. 베일을 씌워준 뒤에는 남자 쪽으로 가 그의 발을 주무르고 문지르고 했다. 그제서야 젊은이는 눈을 떴다. 눈을 뜬 젊은이는 위엄있고 점잖게 생긴 노인이 자신의 발을 주무르고 있는지라, 너무나 부끄러워 발을 움츠리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노인의 손을 잡고 입맞추었다. 그때 아니스 알 쟈리스 역시 잠에서 깨어났다. 『당신들은 어디서 오셨소?』 『노인장, 저희들은 타국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누르 알 딘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들고 있었다. 고향을 버리고 이 먼 타국까지 온 자신의 신세가 갑자기 슬퍼졌던 것이다. 『여보, 젊은이, 일찍이 예언자 모하메드(알라시여! 부디 그분께 축복을 주시고, 그 분을 지켜주소서!)는 타국 사람들을 후히 대접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자, 일어 나시오. 나와 함께 정원으로 들어가 구경하시구료. 그러면 마음의 시름도 잊힐 것입 니다』 『그런데 노인장. 이 아름다운 정원은 대체 어느 분의 것입니까?』 그러자 노인은 대답했다. 『내가 선조한테서 물려받은 것이랍니다』 그가 이렇게 대답한 것은 두 사람을 안심시키고 정원으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해서 였다. 노인은 그 아름다운 두 젊은이가 몹시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누르 알 딘과 아니스 알 쟈리스는 노인에게 감사를 드리고 난 뒤 나란히 손을 잡 고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큰 홀처럼 지은 문 은 높이 솟아 있는데 그 벽과 지붕에 색색의 열매가 열린 포도덩굴이 잔뜩 덮여 있 었다. 붉은 열매는 루비 같고, 검은 열매는 흑단 같았다. 문 저쪽에는 나뭇가지로 시렁을 얹은 정자가 있는데 그 둘레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는 하나만 달린 과일도 있 고 송아리가 져서 늘어진 과일도 있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고, 밤꾀꼬리는 갖가지 소리들로 노래하고, 산비둘기들의 구구거리는 노랫소 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티티새는 휘파람 소리를 내고 있었고, 흰 비둘기는 흡사 술 에 취한 것 같은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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