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유승은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 타고 나갔던 보드를 앞에 두고 반려견 ‘밤이’와 함께 미소 짓고 있다. 유승은은 한국 스노보드 빅에어 최초 올림픽 메달 획득 역사를 함께한 이 보드를 2018평창기념재단에 기부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동메달리스트 유승은(18·성복고)은 4일 경기 용인시 집을 떠나 부산행 기차에 오른다. 프로야구 팀 롯데 자이언츠의 사직 안방 개막전 마지막 날(5일) 시구를 맡았기 때문이다. 유승은은 롯데 스키·스노보드팀 소속이다.
올해 롯데그룹은 스포츠 후원 사업에서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다. 회장사를 맡고 있는 스키·스노보드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 때 금, 은, 동메달을 한 개씩 가지고 돌아왔다. 한국 올림픽 출전 역사상 최고 성적이다. 또 롯데 골프단 소속인 김효주(31)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파운더스컵과 포드챔피언십에서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하나 남은 ‘아픈 손가락’이 자이언츠다. 자이언츠는 개막 2연전을 모두 이겼지만 주중 3연전 때는 싹쓸이 패배를 당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최근 만난 유승은은 “올림픽 메달 기운을 잘 전해서 꼭 ‘승요’(승리요정)가 되고 싶다. 올해 자이언츠의 ‘가을 야구’를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승은은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최근 2년간 뼈가 성한 적이 없었다. 2024년 2월 강원 겨울청소년올림픽 때는 경기 하루 전 쇄골이, 그해 10월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월드컵 데뷔전 때는 발목이, 지난해 11월에는 손목이 부러졌다.
손목 부상 이후 유승은은 어머니 이희정 씨(47)에게 ‘재수학원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 그러나 손목뼈를 고정하는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출전한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메달(은)을 따냈다.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들이 고3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유승은은 모든 운동선수의 꿈인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유승은은 “통장에 돈(포상금)이 들어오는 걸 보면 올림픽 메달을 딴 게 실감 난다”며 웃었다.
하지만 타고난 ‘짠순이’인 유승은이 돈을 쓰는 곳은 편의점과 주말에 공부하러 가는 스터디 카페뿐이다. 편의점에서도 여전히 ‘원 플러스 원’을 찾고 비슷한 상품 중에서는 제일 싼 제품을 고른다. ‘낭랑 18세’ 유승은이 이렇게 짠순이가 된 건 해외 전지훈련이 필수인 스노보드를 타면서 부모님에게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이다.
유승은은 2023년부터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단체 캠프 참가 때 ‘n분의 1’로 나눠 내던 돈을 홀로 감당하기 시작하니 훈련비가 수직으로 상승했다. 그해 여름 뉴질랜드 전지훈련 때 3개월간 쓴 돈만 7000만 원이 넘는다. 어머니 이 씨는 “남편이 그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지원했다. 승은이한테도 ‘여기서 어떤 대회든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면 접자’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유승은은 당시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와 호주·뉴질랜드 대륙컵(ANC)에서 모두 은메달을 땄다. 유승은은 이 두 대회에서 FIS 포인트를 쌓아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고 이듬해에는 국가대표에도 발탁됐다.
그렇다고 유승은이 벌써 구두쇠가 된 건 아니다. 유승은은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국가대표팀 격려 행사 추첨 이벤트 때 1등 경품인 고급 호텔 숙박권을 뽑았다. 유승은은 그동안 훈련을 도와준 트레이너 코치에게 ‘호캉스’(호텔+바캉스) 기회를 양보했다.
유승은이 돈을 아끼지 않는 존재가 또 있다. 2021년 입양한 유기견 ‘밤이’다. 유승은은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수의사가 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동물을 좋아한다. 유승은은 “올림픽 메달 지분의 80%는 밤이, 나머지 10%씩이 엄마, 아빠”라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 “내가 먹는 건 제일 저렴한 걸 사는데 밤이한테는 아끼고 싶지 않다. 가장 좋은 걸 사주고 싶다”면서 “얼마 전에 마트에서 1kg에 8만 원짜리 사료를 사려다 엄마가 ‘할인할 때 사자’고 말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웃었다.
사실 유승은이 올림픽 메달을 딸 때 타고 나간 보드 역시 선수용이 아니라 일반인용, 그것도 가격이 절반으로 내려간 ‘이월 상품’이었다. 유승은은 이 보드와 함께 당시 착용한 보드복, 고글 등을 2018평창기념재단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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