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여제’ 송년 인터뷰
최다승 달성땐 막힌게 터진 기분… 하루하루 최선다해 결국 꿈 이뤄
자연속에서 차 마시는것 좋아해… 일주일 동안 쉬면서 한해 마무리
새해도 기록 경신위해 몸만들기… 4월 亞선수권 그랜드슬램 도전
3년 연속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로 올해를 마감한 안세영이 우승 세리머니 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세영은 올해 단일 시즌 최다승(11승) 타이기록,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단일 시즌 최고 승률(94.8%), 단식 선수 최초 시즌 상금 100만 달러 돌파 등 각종 기록을 세웠다. AP 뉴시스
“내 몸에게 빌었다. 제발 1점만 버티게 해달라고.”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23)은 21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파이널스 여자 단식 결승에서 ‘챔피언십 포인트’를 남겨둔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안세영은 세트 스코어 1-1로 맞선 3세트에서 왕즈이(중국·2위)에게 20-10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안세영이 왼쪽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면서 경기가 잠시 중단됐다. BWF 월드투어 도입(2018년) 이후 모모타 겐토(31·일본·남) 한 명만 세웠던 단식 최다승(11승) 타이기록까지 단 1점을 남겨둔 상황에서 왼쪽 다리에 쥐가 왔던 것.
29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 응한 안세영은 “대회를 앞두고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걱정을 많이 했다”며 “경기가 접전으로 진행되면서 많이 뛰는 바람에 다리에 쥐가 났다. 제발 1점만 버틸 수 있게 해달라고 내 몸에 빌고 또 빌었다”고 말했다. 안세영은 결국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한 포인트를 따내며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 “매일 최선 다하면 꿈 이뤄져”
안세영은 이날 우승으로 배드민턴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남녀 통틀어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웠고 3년 연속 여자 단식 1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와 함께 월드투어 역사상 시즌 최고 승률 기록(94.8%)을 세웠고 단식 선수 최초 시즌 상금 100만 달러(약 14억3000만 원)를 돌파했다.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떠오른 2025년을 통틀어 안세영은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22일 금의환향한 후 국내 언론과 첫 인터뷰를 가진 안세영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에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터지는 기분이었다”며 “이 대회를 통해 많은 기록을 세울 수 있어서 정말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단식으로 한 시즌 10승 고지에 오른 것도 안세영이 처음이다. 그는 “여자 단식 선수로는 처음으로 10승을 달성했을 때도 마냥 행복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매 경기를 후회 없이 하자는 생각만 했다”며 “그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렇게 내가 꿈꿔왔던 것들이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 한 해였다”라고 했다. ● 비행기에서 맞이하는 새해
안세영은 올해 새로운 기록을 세울 때마다 “딱 하루만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시즌이 남아 있고 자신이 다시 가야 할 길이 있기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연습과 대회에 집중했다.
월드투어 파이널스 우승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한 안세영은 “많이 지쳐 있어서 연말에는 일주일 정도 쉬었다. 한적한 카페에 들러 감성에 젖어 휴식을 취하곤 했다”며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짧은 휴식 후 그는 2026시즌 새로운 기록을 위해 다른 사람보다 빨리 새해를 시작한다. 안세영을 비롯한 한국 배드민턴 선수단은 새해 1월 1일 0시 10분 비행기에 탑승해 말레이시아로 향한다. BWF 월드투어 말레이시아오픈(슈퍼 1000) 타이틀 방어를 위해서다. 올해 슈퍼1000 4개 대회 중 3개 대회에서 우승한 뒤 마지막 대회였던 중국오픈 4강전에서 무릎 통증으로 기권해야 했던 안세영은 올해 BWF 역사상 최초의 ‘슈퍼1000 슬램’(슈퍼 1000 대회 전승)에 재도전한다. 안세영은 “중국오픈 4강전에서 미끄러지면서 통증이 심해져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2026시즌을 여는 말레이시아오픈에선 좀 더 기본에 충실한 준비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으려 한다. 이 대회를 마친 뒤엔 또 다른 기록을 위해 재정비를 하며 몸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 2026년도 ‘나의 해’로
안세영은 월드투어 파이널스 우승 직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년엔 더 많은 기록을 깨보고 싶다”는 각오를 남겼다. 안세영은 슈퍼 1000 슬램 외에도 내년 4월 7일 개막하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그랜드슬램’ 달성에 도전한다. 안세영은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고 2024 파리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선수권 정상만 차지하면 카롤리나 마린(32·스페인)에 이어 여자 단식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 그랜드슬램 기록을 남기게 된다. 한국 여자 선수 가운데 그랜드슬램에 성공한 선수는 없다.
안세영은 “욕심은 나지만 ‘그저 똑같은 경기’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좋은 결과를 위해선 연습부터 후회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만든다는 마음으로 연습부터 착실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9월 19일부터 열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타이틀 수성에 나선다. 안세영이 이 대회에서도 우승하면 한국 단식 선수로는 남녀부를 통틀어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루게 된다. 안세영은 “아시안게임 단체전과 개인전 모두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안세영이 가장 욕심 내는 대회는 8월 17일부터 인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이다. 2023년 한국 단식 선수 최초로 이 대회 정상에 오르며 새 역사를 썼던 안세영은 지난해엔 4강전에서 탈락해 2연패에 실패했다. 안세영은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결과를 내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 또 한 번 새로운 획을 긋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