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은 ‘6번 늪’에 빠진 김연경을 얼마나 도울 수 있을까 [발리볼 비키니]

황규인 기자 입력 2021-03-30 10:18수정 2021-03-3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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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연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배구 여제’ 김연경(33)이 ‘6번 늪’에 빠졌습니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평가를 받던 흥국생명이 프로배구 2020~2021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에서 벼랑 끝에 몰린 이유입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께 말씀드리면 각 팀은 세트마다 라인업을 제출하며 각 선수는 라인업 순서에 따라 1~6번 자리를 시계방향으로 한 칸씩 옮겨 가면서 경기를 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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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로테이션’(rotation)이라고 하고 2~4번 자리에 위치한 선수를 전위(前位), 나머지를 후위(後位) 선수라고 부릅니다.

후위 선수는 네트와 어택라인 사이에서 네트보다 높이 있는 공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떤 선수가 후위에 위치했을 때는 공격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팀 최고 공격수가 전위에 최대한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를 고르는 게 라인업을 짜는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는 4번입니다. 실제로 이번 시즌 여자부 정규리그 경기 기준으로 4번 자리에서 시작한 선수는 전체 랠리 가운데 54.1%를 전위에서 소화했습니다. 반면 1번 자리에서 시작한 선수는 54%가 후위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V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4번, 세터가 1번에서 시작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배구 역사를 살펴보면 이 확률 차이 때문에 세터와 대각에 서는 주 공격수 = 라이트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세터가 전위에 있을 때는 전위에 있는 공격수가 두 명뿐이지만 후위에 있으면 공격수 세 명이 전위에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됩니다.

● 공격 효율 0.082


그러면 냉정하게 말해 외국인 선수 브루나(22·브라질)가 김연경보다 공격력이 떨어지는 흥국생명은 이번 챔프전 때 어떤 라인업을 짜고 있을까요?

신기하게도(?)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챔프전 두 경기 모두 김미연(28)을 4번 자리에 배치한 채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대신 브루나가 3번 자리에서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김연경은 두 경기 모두 6번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레프트 자원인 김미연을 라이트 자리에, 원래 라이트 자원인 브루나를 레프트 자리에 배치하는 ‘변칙 라인업’을 들고나온 겁니다.




이 라인업이 성공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결과는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김연경이 전위(45.7%)보다 후위(54.3%)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 챔프전 때 김연경은 일부러 후위에 오래 두려고 1번 자리에 배치하는 세터만큼 오랜 시간을 후위에서 소화해야 했습니다.

플레이오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오프 세 경기를 치르는 동안 김연경은 전체 랠리 가운데 50.1%를 전위에서 49.9%를 후위에서 뛰었습니다. 사실상 반반이었던 것.

그런데 챔프전 때는 특히 6번 자리에 머문 시간이 길었습니다. 이론적으로 계산하면 김연경은 이번 챔프전 기간 전체 랠리 가운데 16.5%를 6번 자리에서 소화해야 했습니다. 실제 결과는 23.1%였습니다.




김연경이 6번 자리에 이렇게 오래 묶여 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김연경이 6번 자리에 있을 때 흥국생명 전위에는 김미연 - 브루나 - 이주아(21)가 들어서게 됩니다.

세 선수는 공격을 총 49번 시도해 13번(26.5%) 성공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나마 나머지 36번 가운데 5번은 상대 블로킹에 당했고 4번은 공격 범실로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공격 효율로 계산하면 0.082가 전부입니다.

● 차상현의 덫


흥국생명이 이 자리에서 이렇게 부진한 제일 큰 이유는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이 이 자리에 덫을 쳐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로테이션 순서 때 GS칼텍스에서는 주로 강소휘(24)가 서브를 넣었습니다. 강소휘는 정규 시즌 때 상대 팀 서브 리시브 효율을 27.1%(3위)로 끌어내리는 ‘강서버’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강소휘 서브 때 GS칼텍스 전위에는 이소영(27) - 러츠(27) - 문명화(26)가 자리 잡게 됩니다.

이러면 먼저 러츠(206cm)와 문명화(189cm)가 높다란 블로킹 벽을 칠 수 있습니다. 또 공이 GS칼텍스 쪽으로 넘어와 반격 기회를 잡았을 때는 팀 내 공격 효율 1위 이소영(0.313)과 2위 러츠(0.303)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강소휘 서브 + 러츠-문명화 블로커 조합 위력을 체감한 브루나.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만약 GS칼텍스가 득점에 성공하면 강소휘 서브부터 랠리를 다시 시작해 연속 득점을 노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GS칼텍스는 전체 챔프전 두 경기에서 얻은 전체 150점 가운데 33점(22.0%)을 이 자리에서 뽑아냈습니다. GS칼텍스가 가장 많이 점수를 올린 게 바로 이 자리입니다.

이렇게 GS칼텍스 공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김연경은 6번 자리 그러니까 후위에 오래 묶여 있게 됩니다.

● 공격 점유율 68.4%, 서브 리시브 점유율 36.7%


김연경이 전위로 올라와도 GS칼텍스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습니다.

김연경은 후위에서 흥국생명 전체 서브 리시브 가운데 18.9%(74개 중 14개)를 책임졌습니다. 전위에서 이 비율은 36.7%(60개 중 22개)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갑니다. GS칼텍스 선수들이 김연경을 향해 ‘목적타’를 날렸기 때문입니다.

김연경은 전위에서 서브 리시브 효율 45.5%를 기록하면서 목적타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GS칼텍스 리베로 한다혜(26)가 정규시즌에 기록한 서브 리시브 효율이 45.6%입니다.

상대 서브를 정확하게 받은 뒤 공격까지 성공한 김연경. KBSN 중계화면 캡처


문제는 서브 리시브만 잘해서는 점수를 올릴 수 없다는 점. 김연경이 받은 GS칼텍스 서브 22개 중 16개(72.2%)는 김연경의 공격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이 16개를 포함해 김연경은 팀 전체 공격 시도 79개 가운데 54개(68.4%)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공격 효율 0.352를 남겼습니다. 정규리그 경기에서 공격 점유율 10% 이상을 기록한 선수 가운데 이보다 공격 효율이 높은 건 0.366을 기록한 양효진(32·현대건설·센터)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김연경은 챔프전 두 경기를 치르는 동안 전위에서 리베로급 서브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면서 센터급 공격 효율을 남긴 겁니다. 그것도 100%가 넘는 ‘공격 점유율 + 서브 리시브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배구는 전위에서 한 선수만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아, 김연경은 챔프전 두 경기를 합쳐 디그를 19개 성공했습니다. 물론 흥국생명에서 제일 많은 기록입니다.

● ‘배구 여제’ 이대로 안녕?


흥국생명 김연경.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V리그 무대로 돌아오면서 흥국생명과 1년 계약을 맺은 김연경은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시즌이 끝나면 다시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흥국생명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 2차전 모두 GS칼텍스에 0-3으로 무릎을 꿇은 상황. 30일 안방 구장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리는 3차전마저 내준다면 여자부 이번 시즌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배구는 팀 스포츠고 김연경이 제아무리 ‘끝까지 가자’고 외쳐도 팀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대로 걸음을 멈춰야만 합니다. 과연 팀 동료들이 김연경을 6번 늪에서 건져 올릴 수 있을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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