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돌리다 끝나던 서울이 원한 카드, ‘차이 만드는’ 기성용

  • 뉴스1
  • 입력 2020년 8월 31일 11시 39분


첫 경기였음에도 기성용은 클래스가 다른 키핑력과 패스를 뽐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뉴스1
첫 경기였음에도 기성용은 클래스가 다른 키핑력과 패스를 뽐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뉴스1
FC서울이 0-2로 뒤지고 있던 후반 20분, 기성용이 울산 문수구장 필드 안으로 들어섰다. 지난 2009년 11월21일 전남드래곤즈와의 경기 이후 10년9개월9일, 날짜로는 3935일 만에 성사된 그의 K리그 복귀전이었다. 기성용은 이후 스코틀랜드 셀틱 유니폼을 입고 유럽 도전을 시작했고 지난 7월 친정 FC서울 유니폼을 입으면서 컴백을 알렸다.

팬들의 기대는 컸으나 기성용 개인적으로는 부담이 적잖았을 경기다. 무려 11년 만에 국내 팬들에게 다시 선을 보이는 무대였다. 게다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반년 이상 실전 경기는 없었고 입단 뒤에도 재활로만 두 달가량을 보냈다. 하지만, 클래스는 달랐다.

기성용이 중원에 자리한 뒤 신진호, 윤빛가람 등 울산의 미드필더들이 달려들어 공을 빼앗으려다 연거푸 파울을 범했다. 일종의 신고식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고 집요한 견제에 시달렸는데 공을 넘겨주지 않았다. 대표팀에서 10년 이상 기둥으로 활약하던 기성용은 확실히 남다른 키핑 능력을 자랑했고, 강한 압박 속에서도 공을 지켜내며 공격을 풀어갔다.

이전까지 옆으로 뒤로 공을 돌리던 것에 급급하던 서울은 기성용의 탈압박과 함께 조금씩 공격의 활로를 찾는 모양새였다. 물론 넉넉하게 리드하고 있던 울산이 전진을 자제한 채 라인을 내린 영향도 있었으나 서울의 공격은 빈도부터 효율성까지 모두 달라졌다.

기성용 특유의 ‘대지가르기’ 패스도 나왔다. 하프라인 아래에서 공을 잡은 기성용은 오른쪽 측면으로 오버래핑하던 윤종규를 향해 대각선 롱패스를 보냈고,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오차 없이 배달됐다. 아직 직접 뛰는 것은 무거워보였으나 시야, 킥, 센스 등은 확실히 남달랐다.

이날 경기는 울산의 3-0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이청용이 친정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것을 포함, 우승후보다운 전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서울 팬들이 마냥 침울하진 않았을 경기다. 짧은 시간에도 존재감을 보여준 기성용과 함께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김호영 FC서울 감독대행 경기 후 “보셨듯 기성용은 퀄리티가 다른 선수”라면서 “90분을 다 뛸 수 있게 된다면 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분명히 차이를 만들어 낼 선수”라고 평가했다. 경기 중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플레이어. 올 시즌 FC서울에 가장 필요했던 퍼즐이다.

FC서울의 전임 최용수 감독은 “울산현대나 전북현대는 개인 역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경기 중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라는 뜻을 전한 바 있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뭔가 해법이 절실할 때 개인의 힘으로 단초를 마련해주는 플레이어 유무가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안타깝게도 현 스쿼드 서울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이기도 했다.

실제 올 시즌 서울은 밋밋했다. 참가 12개 클럽 중 최다실점(18경기 34실점)을 기록할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던 수비라인도 갈지 자 걸음의 배경이었으나 부실한 공격 전개도 지적이 불가피하다. 결정력도 떨어졌지만 전방, 상대 위험지역까지 공을 뿌려줄 공급책도 없었다.

올해 서울의 경기를 보면 점유율을 밀리지 않는데, 외려 상대보다 높은데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패배하는 일들이 잦았다. 울산전도 그랬다. 경기 종료 후 점유율은 52대48로 서울이 더 앞섰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지점에서 공을 소유하고 있었느냐다.

하프라인 근처나 자신들의 진영에서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길었으나 정작 울산 진영으로 도전적인 패스를 뿌리거나 창의적인 형태의 플레이를 펼친 시간은 적었다. 중원에서 밋밋하게 공을 다루다 횡패스, 백패스에 그치거나 소유권을 넘겨줬으니 좋은 찬스를 잡기 힘들었다. 서울에게 꼭 필요했던 카드, ‘차이를 만들어 낼’ 도전적인 선수가 가세했다.

기성용이 슈퍼맨은 아니겠으나 적잖은 플러스 요소가 될 것임은 확인이 됐다. 공 간수 능력이나 과감한 침투패스는 ‘달랐다’. 이제 첫 경기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서울 입장에서는 더 고무적이다. FC서울의 2020시즌 잔여 일정이 보다 흥미로워졌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