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121골…‘전설’ 차범근과 ‘전설 닮은’ 손흥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0월 23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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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손흥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축구의 전설’ 차범근(66)은 ‘칭찬’ 신봉자다. 쓴 소리보다는 칭찬과 격려가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훨씬 더 긍정적이라고 굳게 믿는 지도자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이 조금만 잘하는 모습이 보이면 침이 마르도록 치켜세운다.

차범근은 최근 한 행사에 참석해 손흥민(27·토트넘)의 기를 살려줬다. 그는 “레버쿠젠에서 뛰던 어린 손흥민과 만났을 때의 일이다. 날 보더니 ‘제가 선생님 기록을 꼭 깨겠다’고 하더라. 나는 ‘그러라’고 이야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강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의 손흥민은 독일에서 뛰던 당시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선수다. 이 정도면 세계적인 선수로 우리가 인정을 해야 한다”며 손흥민을 평가했다. 관리만 잘하면 훨씬 더 큰 선수가 될 것이라는 확신도 빼놓지 않았다. 이날 차범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손흥민을 언급하며 아낌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차범근의 평가처럼 손흥민은 이미 세계적인 선수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아울러 기록으로만 보면 자신의 우상인 차범근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손흥민은 23일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와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리그 3차전 홈경기에서 전반 16분과 44분 연거푸 골을 터뜨렸다. 이로써 손흥민의 프로 통산 골은 121골이 됐고, 이는 그동안 차범근이 보유한 한국인 유럽무대 최다 골과 타이를 이뤘다.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데뷔해 레버쿠젠을 거쳐 2015년 여름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한 손흥민이 10시즌 만에 이룬 대기록인데, 이제 한 골만 더하면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최근 선수 차범근과 손흥민을 비교하는 글들이 많아졌다. 과연 누가 더 뛰어난 선수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이영표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손흥민은 차범근 전 감독님의 재림이다.” 스피드가 엄청나다는 점과 양발 슈팅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 등을 들면서 ‘재림’이라고 표현했다.

둘의 기록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유럽 진출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나이, 소속팀 등이 많이 다르다. 이런 까닭에 121골이 갖는 의미도 서로에게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버쿠젠 시절 차범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레버쿠젠 시절 차범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고교 시절 이미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로 평가받던 차범근은 한국과 아시아를 평정한 뒤 군복무를 마친 20대 중반에 독일로 건너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선수를 돕는 에이전트 제도가 없어 독일 교민들이 도움을 주던 시절이었다. 구단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도전 의식 하나만을 가슴에 새긴 채 맨땅에 헤딩했다.

결과적이지만 축구인생을 건 그의 도박은 성공했다. 차범근은 198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외국인 선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스피드와 파워, 헤딩력 등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1979~1980시즌부터 10년간 뛰면서 정규리그 98골을 포함해 총 121골을 넣는 동안 외국인 선수 최다골 등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다. 누구보다 자기관리가 철저했다. 그 덕분에 30대 후반까지도 거뜬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반면 손흥민은 동북고를 중퇴하고 10대 중반에 일찌감치 독일 무대로 향했다. 축구선수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개인 지도를 받은 덕분에 기초가 탄탄했다.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에 선진 프로그램이 접목되면서 손흥민은 폭풍 성장을 거듭했다.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을 거친 뒤 2015~2016시즌 세계 최고 리그인 잉글랜드 무대(EPL)에 뛰어들었는데, 스피드를 활용한 폭발적인 드리블과 날카로운 슈팅은 그곳에서도 기분 좋게 통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군 문제를 해결한 그는 지난 시즌 20골을 기록하는 등 한층 물오른 기량을 보였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인 발롱도르의 최종 후보 30명에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건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서 역할이 막중하다.

차범근은 이미 전설이다. 감히 범접하기 힘든 존재라는 데 이견이 없다. 손흥민은 그 전설을 닮아가고 있다. 지금의 페이스를 보면 결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누가 더 위대한 선수냐를 따지는 건 시간 낭비일지 모른다. 전설 차범근과 그 전설을 닮은 손흥민, 이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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