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행 좌절’ 스키대표들 심경고백 “올림픽만 보고 달려왔는데…”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월 28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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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된 알파인스키 김설경(왼쪽)과 경성현.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하루아침에 태극마크를 반납하게 된 알파인스키 김설경(왼쪽)과 경성현.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어떠한 해명도, 사과도 받지 못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올림픽이었는데….”

2018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확정짓고 훈련에 매진하던 선수들이 개막을 얼마남겨 놓지 않고 대회에 나설 수 없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황당한 사건은 알파인스키대표팀에서 벌어졌다. 공식단복을 지급받고 국가대표 결단식까지 참석했던 경성현(28·홍천군청)을 비롯해 김현태(28·울산스키협회), 김설경(27·경기도체육회), 이동근(24·국군체육부대), 김서현(27·대전스키협회)까지 모두 5명이 하루아침에 태극마크를 반납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선수들을 실의에 빠트린 사건은 평창올림픽 결단식이 열렸던 24일을 전후해 벌어졌다. 대한스키협회는 23일 국제스키연맹(FIS)으로부터 평창올림픽 남녀 쿼터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협회가 확보한 출전권은 예상에 한참 못 미친 4장에 불과했다. 기존 9명 선수단 모두가 평창올림픽에 나서리라고 판단했던 대표팀으로선 믿기지 않는 상황. 협회는 결국 다음날인 24일 종목위원회 긴급회의를 열고 정동현(30·하이원)과 김동우(23·한체대), 강영서(21·한체대), 김소희(22·단국대)를 남녀 대표로 선발했다.

같은 시각, 국가대표에서 제외된 선수들에게도 하나둘 비보가 전해졌다. 뒤이어 이들의 평창올림픽 출전불발 논란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리고 사건 발생 사흘 뒤인 27일, 스포츠동아는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선수들의 심경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 모처에서 만난 경성현과 김설경 그리고 익명을 요구한 선수A는 “그저 허탈할 뿐이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며 억울한 심경을 전했다.

이들은 평창행이 좌절된 24일을 잊을 수 없는 듯했다. 김설경은 “서울에서 열리는 결단식 참석을 위해 강원도 훈련지에서 길을 나서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코칭스태프로부터 ‘평창올림픽에 못 나가게 됐으니 결단식에 가지 않아도 된다’라는 언질을 받았다. 너무나도 황당해 곧바로 (경)성현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4일 대한민국 평창올림픽 결단식에 참석한 경성현(가운데)이 이낙연 국무총리, 김지용 선수단장 등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경성현은 이날 저녁 평창올림픽 출전 좌절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사진제공 | 경성현
24일 대한민국 평창올림픽 결단식에 참석한 경성현(가운데)이 이낙연 국무총리, 김지용 선수단장 등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경성현은 이날 저녁 평창올림픽 출전 좌절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사진제공 | 경성현

후배의 연락을 받은 경성현으로서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경성현은 “일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따로 통보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단식이 끝난 뒤 상황을 다시 파악하려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단식 당일 저녁이 되자 경성현 역시 지인을 통해 같은 소식을 접했다. 단복까지 지급받고 결단식에도 참석한 당사자로선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성현은 “협회는 최근 열린 전국동계체전 당시 선수들을 불러 단복을 지급했다. 이때 동료들 모두 ‘우리가 평창올림픽에 나서는구나’라고 느끼게 됐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됐다”고 말끝을 흘렸다.

이들이 분노를 느끼는 지점은 평창올림픽 쿼터와 관련해 협회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는 대목이다. 2014소치동계올림픽에서도 쿼터 5장을 확보했는데 개최국으로서 출전하는 대회에 4명밖에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선수A는 “우리는 FIS 기준 올림픽 출전 포인트를 모두 따놓았다. 협회가 쿼터만 제대로 확보했다면 출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 사태 직후 협회로부터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를 듣지 못했다, 이미 선수들은 물론 동료들 모두 마음이 다쳤다”고 울먹였다.

현재로선 이들이 구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9일 전 종목 엔트리를 발표하는데 이 시점 전까지 다른 나라 선수들이 출전권을 내놓아야 마지막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선수들은 물론 협회 역시 구제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비록 현실적인 벽은 높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선수 측은 현재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있다. 경성현의 아버지인 경화수(57)씨는 28일 전화통화에서 “내일 몇몇 선수 학부모들과 함께 이번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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