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베이스볼] 최형우의 인생 역정, ‘포기’에서 ‘100억’까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2월 8일 05시 30분


‘100억원의 사나이’ KIA 최형우는 “난 2군 생활에 젖어있었다”며 방출 이전을 돌아봤다. 경찰야구단 입대 이후 모든 게 바뀐 그는 최고액을 받는 선수가 됐지만 “꾸준한 선수라는 말이 제일 듣고 싶었고, 내세울 수 있는 말이다. 하던 대로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100억원의 사나이’ KIA 최형우는 “난 2군 생활에 젖어있었다”며 방출 이전을 돌아봤다. 경찰야구단 입대 이후 모든 게 바뀐 그는 최고액을 받는 선수가 됐지만 “꾸준한 선수라는 말이 제일 듣고 싶었고, 내세울 수 있는 말이다. 하던 대로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최형우(33·KIA)는 스타플레이어들 중에서도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선수다. 직장인으로 비유하면, 정리해고를 당했던 말단 직원이 수억 원을 받고 스카우트되는 상종가를 친 셈이다. 바닥을 쳤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올 시즌 최형우는 타격 3관왕(타율·최다안타·타점)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시즌 뒤에는 FA(프리에이전트) 역대 최고액인 4년 총액 100억원에 삼성에서 KIA로 이적했다. 연말 시상식엔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MVP(최우수선수)는 두산 더스틴 니퍼트에게 내줬지만, 선수들이 직접 뽑은 동아스포츠대상과 선수협 시상식에서 ‘올해의 선수’에 올랐다. “그동안 상복이 없었는데 선수들이 뽑은 상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던 최형우와 만나 그가 걸어온 야구인생을 돌아봤다.

KIA 최형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KIA 최형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난 2군 선수였다, 포수 안 되는데 들어간 경찰

-먼저 프로에 입단(삼성)했을 때로 시계를 되돌려보자. 어떤 선수였나.

“그냥 마지못해 나와서 하는 선수였던 것 같다. 2군 생활에 빠져있었다. 2군 친구들이랑 놀면서 그렇게 보냈다. 1군 기회도 거의 없었고, 1군을 바라볼 계기도 없었다. 그런 마음이 방출 전까지 계속 됐다. 1~2년 지나면서 ‘난 삼성 선수이긴 한데 삼성 2군 선수다’라는 게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경산이 좋고, 편하고. 그런 생활에 젖어있었다.”

-2005년 말, 입단 4시즌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일반 직장인들이 잘리는 것보다 수백 배는 더 암담할 것이다. 공부를 한 사람들은 일자리 구하는 게 어렵지만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우린 모아둔 돈도 없는데 2군 생활만 하다 방출되면 공부도 안 해봤지, 사회생활도 안 해봤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방출 이후 경찰야구단에 입단하며 마지막 희망을 살렸다.

“그땐 아무런 계획 없이 짐을 싸 집으로 갔다. 갔는데 돈이 없어서 막노동 같은 일을 하는 와중에 경찰야구단 창단 소식이 들렸다. 그때만 해도 ‘도전해보자’도 아니고, ‘일단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안 가면 끝이니, 무조건 가야했다. 독한 마음을 먹는다거나, 성공하겠다거나 그런 생각도 못했다. 합격해서 너무 좋았지만 사실 경찰 야구단에 말 못할 문제, 죄송한 일이 있었다.”

-무슨 문제였나?

“난 그때 포수가 안 됐다. 방망이는 자신 있었는데 심리적 문제로 송구가 되지 않았다. 다른 포지션으로 테스트를 봤어야 했지만, 당시 상대적으로 포수 경쟁률이 낮아서 그걸 숨기고 테스트를 봐 합격했다. 내가 사기꾼도 아니고 합격하자마자 김용철 감독님을 찾아가 ‘저 포수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외야수로 뛸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

-그 전에 외야수로 뛴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금방 적응이 됐나?

“(손사래를 치며) 전혀 아니다. 공이 이쪽에 떨어지는데 저쪽으로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방망이를 곧잘 친 덕분에 수비가 엉망이어도 경기에 뛰게 해주셨다. 제대 후에도 사실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외야수였다. 김용철 감독님은 내게 은사다. 포지션을 바꿔주셨고, 기회를 다시 주신 분이다. 경찰청에서 보낸 2년은 내 야구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성격도 바뀌고 모든 게 바뀌었다.”

2008 시즌 시절 최형우.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2008 시즌 시절 최형우.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화려하게 돌아온 삼성, 중심타자로 신인왕과 우승까지

-제대 후 거의 모든 구단의 러브콜을 받은 걸로 안다. 그런데 방출시킨 삼성으로 돌아갔다.

“사실 그때 최저연봉인 상태에서 잘렸으니, 데려오기 쉬웠을 것이다. 삼성을 선택한 이유는 ‘정’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를 자른 구단이 싫을 것이다.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다시 야구를 해야 하고 1군에서 뛰어야 한다는 걸 생각했다. 팀 적응이 중요했고 경기에 나갈 수 있어야 했다.”

-삼성 복귀 첫 해인 2008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그때 최고령 신인왕이었다. 나이를 먹어서 남 다른 게 아니라 최형우라는 손톱의 때만한, 말도 안 되는 애가 이렇게 돌아와서 상까지 받았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삼성 복귀 첫 시즌, 1군에 올라왔을 때 느낌이 궁금하다.

“설렘을 안고 시작했다. 밑바닥을 경험하고 와서인지, 방출 전에 1군에 가끔 와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잘리면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고 했는데 그게 도움이 됐다. 재밌게 했던 것 같다.”

-2011년 처음 우승을 하고, 왕조가 지속됐다.

“(커진 눈으로) 처음 우승할 때 정말 행복했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우승이 처음이었다. 선수들이 1년간 고생하는 게 그 잠깐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다. 그게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정말 좋더라. 많은 걸 느끼고 깨닫는 순간이었고, 우승이 계속 이어져 기뻤다.”

KIA 최형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KIA 최형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100억원에 대한 생각, ‘꾸준한 선수’로 남겠다!

-최형우하면, ‘꾸준하다’는 얘기가 먼저 나온다. KIA도 그 점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내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자, 제일 내세울 수 있는 말이다. 정말 좋다. 3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을 했는데, 난 그걸 달성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그걸 할 수 있는 선수라고 인정받는 게 좋다. 내가 나를 제일 잘 알지만, 난 압도적인 홈런타자가 아니다. 3할-30홈런-100타점을 남들이 몰라줘도 난 이를 최소의 목표로 두고 꾸준하게 하려 한다.”

-FA를 앞둔 시즌, 부담이 컸을 텐데 어땠나.

“마인드컨트롤을 잘한 것 같다. 원래 스트레스를 안 받고, 잡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신경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캠프 때도 주변에 FA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그렇게 2개월 정도 생각을 안 하다 보니, 시즌 들어가고 기록이 조금씩 나왔다. ‘내가 할 것만 하자’고 계속 되새겼는데 올해 슬럼프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잘해도 이러기 힘든데 이틀 이상 안 좋았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불안한 것도 있다.(웃음)”

-사실 FA 계약액수에 초점이 모였고, 상징적인 액수를 받았다.

“금액에 대한 부담은 없다. 부담을 가질 순 있지만, 액수에 대한 생각을 많이 안한다. 지금은 팀을 옮기고, 새 팀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설레기도 하고 들뜬 상태지, 돈을 많이 받아서 어떻다는 생각은 거의 없다. 내가 120억원을 말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선수가 되자’는 말이었다. 지금도 큰 돈을 받아 뿌듯한 게 아니라, 약간은 그런 선수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다.”

-이제 KIA 선수다. 밖에서 본 팀은 어땠나.

“겉으로 봐도 야구장에서 밝고 유쾌하게, 웃으면서 즐겁게 하는 게 보였다. 김기태 감독님께서 워낙 잘하시지 않나. 구성원들과 프런트 관계도 좋다고 들었다. 지금 내가 들어가서 뛰놀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생각이 든다. 사실 고향(전주) 친구들도 다 KIA팬들인데, ‘한 번 여기 와서 하면 재밌을텐데’라는 말은 많이들 했다. 나도 재밌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내년 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나간다. 사실상 처음 A급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너무 신기하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내가 국가대표라고? 나라를 위해 뛴다고?’ 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동안 수비가 약하고, 타격에서 임팩트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 항상 옆 동네 보듯 응원만 했지, 내가 대표팀이 된다는 건 상상이 안 됐다. 소집일에 ‘KOREA’가 박힌 유니폼을 입어봐야 실감이 될 것 같다.”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

“내가 대기록을 세울 선수도 아니고, 꾸준한 선수가 전부다. 양준혁 선배님처럼 꾸준하고 열심히 하는 걸로 인정받고 그렇게 남고 싶다. KIA 팬들께서 지금껏 ‘저 선수 괜찮았네, 저게 맘에 드네’라고 보셨던 모습을 KIA에서 보여드리고 싶다. 계속 하던 대로 하겠다.”

KIA 최형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KIA 최형우.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KIA 최형우

▲생년월일=1983년 12월 16일
▲출신교=진북초~전주동중-전주고
▲키·몸무게=179㎝·106㎏(우투좌타)
▲프로 입단=2002년 삼성 입단(2002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전체 48순위)
▲입단 계약금=5000만원
▲프로 경력=삼성(2002~2005, 2008~2016)~KIA(2017~)
▲2016시즌 성적=타율 0.376(519타수 195안타) 31홈런 144타점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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