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의 ML 여정은 ‘반전 드라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4월 12일 05시 45분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세인트루이스 입단 당시 외로운 싸움
“1구 1구 중요하다” 절실했던 첫 승

세인트루이스 입단 계약서에 사인하러 디트로이트 공항을 경유하려 했는데 때마침 폭설이 쏟아졌다. 비행기는 미지의 작은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그곳에서 하염없이 비행기가 다시 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당시 오승환(34)의 처지처럼 여정은 그렇게 외로웠다. 그러나 오승환을 기다려주는 곳이 있었고, 그는 그곳, 세인트루이스로 가야 했다. 세인트루이스 존 모젤리악 단장은 계약서에 서명하자마자 팀 25인 로스터에 오승환의 이름을 써넣었다. 1월11일(한국시간)이었다. 오승환이 “미국에 온 뒤, 가장 기뻤다”고 떠올린 순간이었다. 그리고 3개월이 흐른 4월11일, 애틀랜타 터너필드에서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첫 승을 얻었다.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경구처럼 “여정 자체가 보상”이었다.

오승환의 첫 승, 한국야구의 자부심

세인트루이스 마이크 매서니 감독이 오승환을 투입하는 타이밍만 봐도 신뢰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어느덧 트레버 로즌솔, 케빈 시그리스트, 조너선 브록스턴과 더불어 불펜 빅4로 자리 잡았다. 11일 터너필드에서도 5-6으로 뒤진 7회 오승환을 호출했다. 피츠버그전 3연패 후 애틀랜타전 3연승에 도전한 세인트루이스의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 표출이었다. 오승환은 최고포수 야디어 몰리나의 리드 속에서 연속 삼진과 2루 땅볼로 이닝을 장악했다. 4경기 3.2이닝 무실점이고 삼진이 무려 8개다. 반면 안타는 1개도 맞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는 8회 역전에 성공했고, 12-7로 승리했다. 승리투수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첫 승을 꼭 기억 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어지간해선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그이지만 이날만큼은 예외였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에게 ‘한국에서 온 투수가 이만큼 할 수 있다’, ‘이만큼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한국야구가 쉽지 않다는 걸 꼭 알게 해주고 싶다.”

세인트루이스로 오기까지 오승환의 여정은 고독했지만 그에게 한국야구와 한국팬들은 멈추지 않고, 길을 걷게 해준 등불이었다.

● 오늘만 사는 놈이 살아남는다!

오승환이 강한 선수라는 것은 발을 디디고 있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필사적으로 모색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머리가 나빠서”라고 웃지만 세인트루이스의 경기 일정을 챙기지 않는다. 오직 오늘 붙을 적수에만 집중한다. “짧게 1∼2년 하고 돌아가려고 오지 않았다”는 말 속에서 ‘세인트루이스에서 밀리면 더 물러날 곳이 없다’는 배수진의 심경이 읽힌다.

모젤리악 단장이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써줬다고 해서 안심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조차도 내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범경기부터 전력을 다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렇게 매서니 감독과 팀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다. 오승환은 볼의 컨트롤이 아닌 마음의 컨트롤을 강조한다.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상심을 기르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음을 그는 일본과 미국 생활을 통해 터득했다.

불펜투수의 삶은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직업이다. 해외에서 야구를 한다는 것은 잘될 때보다 안 될 때 어떻게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그래서 오승환은 마운드에 서있는 시간이 더 좋다. 삶의 일부다. 그곳에 서면 무념무상의 몰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종의 경지다.

위기에 처했을 때, 오승환은 오히려 목표를 더 올려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첫 승을 했다고 들뜨지 않는다.

“정해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은 하루하루, 1구 1구, 1타자 1타자가 중요하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몸을 잘 관리하면 이곳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할 수 있을 것 같다. 몸 상태는 한국에서보다 더 좋아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오승환의 정면승부는 이제 무대를 바꿔 다시 시작이다.

애틀랜타(미국 조지아주)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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