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의지가 큰 힘” 마무리 투수로 성공적 변신 이현승
“9월 1일 SK전 불 끄면서 감 잡아… 2009년의 ‘13승 자만’ 되풀이 없다”
《 두산 마무리 이현승(32)과 안방마님 양의지(28)는 ‘찰떡 콤비’로 불린다. 절친한 선후배로 유명하며 방문경기 때는 자주 룸메이트가 된다. 야구장 밖에서는 인생의 고민까지 주고받는 사이다. 두 선수는 올 시즌 두산을 14년 만의 한국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끈 데 이어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서는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고 다시 한번 정상의 기쁨을 함께했다. 이현승과 양의지는 화려했던 시즌을 마감한 뒤 각자 다른 공간에 있지만 마음만은 서로를 향해 있었다. 》
두산 마무리 투수 이현승이 안방인 서울 잠실구장에서 투구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 두산의 소방수로 자리 잡은 이현승은 “모처럼 야구하는 재미를 느꼈다. 내년에도 어떤 타자를 만나든 정면 돌파하겠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어릴 때 빵과 우유를 준다고 해서 반강제적으로 시작한 야구를 이제야 알겠어요.”
올 시즌 두산의 마무리 투수로 팀 우승의 주역이 된 이현승은 올해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했다. 이현승은 올 시즌 개막 직전까지 5선발 후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당한 손가락 부상으로 6월에서야 팀에 합류하는 바람에 마무리 투수가 됐다. 2010년과 2011년 각각 2세이브, 4세이브를 올렸지만 올 시즌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구위는 자신 있었지만 심리적으로 쫓겼다. 9월 1일 SK전은 그런 그에게 자신감을 찾아준 경기가 됐다. 이현승은 “6-5로 1점 차 앞선 9회초 2사 상황에서 정의윤에게 2루타를 맞고 최정과 상대했다. 과감하게 밀어붙여 범타로 처리하고 세이브를 거뒀는데 그 위기를 극복하면서 확실하게 감을 잡았다”고 말했다.
2009년 넥센에서 13승을 거두며 리그 정상급 왼손 투수로 올라선 그는 이듬해 두산으로 팀을 옮긴 뒤부터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2010, 2011년 3승씩에 그친 그는 군 제대 후인 2014년에도 3승밖에 거두지 못하며 선발 투수로서 존재감을 잃었다. 이현승은 “13승이 준 달콤함에 취해 거만했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타자들과의 승부는 피하지 않겠지만 2009년 13승이 준 안 좋은 기억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3승(1패) 18세이브를 기록한 이현승은 아주 오랜만에 야구하는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이현승은 “2002년 대륙간컵 대표로 쿠바 타자들을 상대한 뒤 국내 타자들이 손쉽게 보여 야구의 재미를 처음으로 느꼈다”며 “올 시즌에는 장기인 슬라이더가 통하면서 두 번째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시속 137∼139km 슬라이더가 통하면서 만약 내 공이 145km 이상이면 상대 타자들은 다 죽었다는 자신감으로 공을 던지게 되더라”고 덧붙였다.
올 시즌 부활의 가장 큰 힘이 된 동료로 그는 주저 없이 양의지를 꼽았다. 그는 “위기 상황에서 갈팡질팡할 때면 늘 의지가 확실하게 답을 줬다”며 “위기에서 공이 좋을 때는 ‘형, 이 공은 어떤 타자도 못 친다’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공이 나쁠 때는 ‘똑바로 던져라’고 호통을 쳐 나로 하여금 헛웃음이 나도록 해 긴장을 풀어줬다”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형이 보듬어줘 빨리 성장”… 프리미어12도 책임진 포수 양의지 ▼
두산 포수 양의지가 서울 잠실구장 구단 사무실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양의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어이, 골든글러브 2회 연속 수상자 뭐하셔.”
두산 김태형 감독은 지난주 잠실구장에서 인터뷰하던 양의지에게 농담을 던졌다. 양의지는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으면서도 넉살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날 두산 선수단의 보육원 방문행사에 앞서 만난 양의지는 “요즘 야구공에 사인을 1000번도 넘게 했다. 아내와 일본 도쿄 여행도 다녀왔다. 이런 맛에 우승하나 보다”며 활짝 웃었다.
양의지에게 2015년은 잊지 못할 한 해이다. 정규시즌에 역대 최고인 타율 0.326, 93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포스트시즌에는 발가락을 다치고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투혼으로 생애 첫 우승 반지를 끼었다. WBSC 프리미어12에서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되는 영광도 누렸다. 양의지는 “올해 삼재가 풀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하늘에서 좋은 기운이 따랐다. 동료들이 잘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포수 출신인 김태형 감독이 한 번도 받지 못한 골든글러브를 두 번이나 받은 양의지는 “난 아직 1000경기 넘게 뛰지도 못했다. 갈 길이 멀다. 여기서 만족하면 후퇴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표팀에 있으면서 정근우 이대호 선배로부터 팀을 하나로 모으는 능력과 리더십을 배웠다. 나도 어느덧 후배들이 늘었는데 자신감을 넣어주고 대화도 많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무리 투수 이현승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지 않았다. “현승이 형은 처음 두산에 왔을 때부터 잘 챙겨줬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후배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경찰청에서 복무할 때도 자주 연락하고 밥도 사줬다.”
양의지의 팀 공헌도는 두산 야수 중 메이저리그 볼티모어에 입단한 김현수 다음으로 높다. 올해 연봉은 2억 원. 두산 관계자는 “양의지의 연봉 인상률이 역대 최고가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2006년 신인 지명에서 2차 8라운드 59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양의지는 “막차로 프로가 됐다. 고향 광주에서 서울에 올라와 구로동 사촌 집에서 잠실까지 전철 타고 다니며 손바닥에서 피가 날 정도로 운동했다”고 회상했다. 고교(광주 진흥고) 시절에 만난 포수 전담 정원배 코치부터 유승안, 김경문, 김태형 감독 등 포수 출신 지도자를 두루 거친 것도 야구에 눈을 뜨게 했다. 양의지는 “어릴 때 의지라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 이젠 너무 좋다. 난 천재형은 아니다. 내일을 더 잘 살기 위해 늘 준비해야 한다. 슬슬 운동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