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kt 장시환은 현대의 희망이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24일 05시 45분


kt 장시환. 스포츠동아DB
kt 장시환. 스포츠동아DB
2007년 데뷔…팀 5번이나 옮겨
만년 유망주 꼬리표에 개명까지
9년 만에 첫 승…kt 에이스 우뚝


2006년 8월 16일 2007프로야구신인드래프트 2차 지명회의. 1순위 지명권을 보유한 KIA는 사실상 1차 지명권을 3장이나 가졌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그 해 1차 지명은 구단별 2명씩이었다). 창단 이후 2005년 첫 꼴찌(양대리그 제외)의 수모를 겪은 KIA는 ‘연고지 우선지명’이었던 1차 지명에선 인하대 오준형과 진흥고 정영일(애너하임과 계약)을 찍고, 2차 1라운드 1순위로 역시 연고지가 배출한 좌완 강속구 투수 양현종(동성고)을 택했다.

그러나 당시 KIA보다 더 큰 만족감을 보인 구단이 있었다. 서울입성분담금이 없어 수원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현대였다. 현대는 1차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2차 지명회의 1라운드에서야 첫 신인 지명권을 쓸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현대는 2차 지명회의 후 쾌재를 불렀다.

● 현대의 마지막 에이스 후보 장효훈

현대는 2차 지명회의 1라운드에서 망설임 없이 북일고 장효훈의 이름을 불렀다. 장효훈은 1년을 유급해 1차 지명 대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고팀 한화가 가장 아쉬워했던 우완 강속구 투수였다. 고교 시절 최고 구속 154km를 찍었고, 8∼9회에도 시속 148km의 빠른 공을 던진 강한 어깨로 프로스카우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84cm의 큰 키에 준수한 외모까지 갖춰 미래의 에이스이자, 스타로서 손색이 없었다. 2007년 현대 지휘봉을 잡은 김시진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명가의 자존심을 되살리겠다. 신인 장효훈을 주목해달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현대→우리→히어로즈→넥센→kt까지 유니폼의 팀 이름이 5번이나 바뀐 9년의 세월 동안 특급 유망주는 1군에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상무에서 뛴 2년을 제외하더라도 무려 7년이다.

● 누구나 인정하는 kt의 에이스 장시환

매년 스프링캠프에선 ‘장효훈이 드디어 유망주의 알을 깬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강속구 투수는 볼을 두려워했다. 투수코치들의 진단도 각각 달랐다. 사이드암으로 변신까지 시도했다. 장효훈은 2008년 이름까지 장시환으로 바꾸며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같은 노력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그리고 2014년 겨울 kt가 자신을 특별지명으로 선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22일 장시환(28)은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SK전에서 4회 2사 후 구원등판해 5.1이닝 동안 3안타 5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로 팀의 2-0 승리를 지켰다. 9년 동안 기다렸던 감격적 첫 승이 팀의 첫 홈경기 승리였다. 과감한 몸쪽 승부, 변함없는 시속 150km대의 강속구와 날카로운 커브까지 자유자재였다.

야구를 위해 이름까지 바꾼 아들은 마지막 공으로 삼진을 잡던 순간, 부모님이 떠올랐다고 했다. “아들이 프로선수가 됐는데, 첫 승을 9년 동안 선물하지 못해 너무나 죄송했다. 나를 믿고 잠재력을 이끌어준 좋은 감독님, 코치님을 만난 덕분이다. 감독님이 ‘볼이면 어떠냐? 네 역할은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끝난다. 후회 없이 던져라’라고 하신 말씀이 많은 것을 바꿨다. 예전에는 사구를 걱정했지만, 이제 ‘맞으면 걸어 나가라’는 생각으로 몸쪽에 공을 던진다. 홈 첫 승이 프로 첫 승이다. 큰 의미를 느낀다. 9년 동안 못했던 승리, 이제 팀 승리를 위해 더 열심히 던지겠다.” 9년 동안 기다린 첫 승이라, 그의 소감은 더욱 진솔했고 마음을 깊이 울렸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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