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스, 자폐 여동생을 위한 ‘그린 재킷’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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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18언더 최저타 타이 우승… 4R 내내 선두는 39년만에 처음
지적 장애 막내 위해 대회마다 선물… 평범한 중산층 출신 가족애도 화제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명인 열전’이라는 마스터스의 79번째 무대는 그로부터 시작해서 그에게서 끝이 났다. 주인공은 만 21세 8개월의 ‘샛별’ 조던 스피스(미국)다. 스피스는 1997년 최연소(21세 3개월) 챔피언에 등극한 타이거 우즈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그린재킷을 입었다. 마스터스 우승 후 밀레니엄 시대를 지배했던 우즈 왕조가 저물고 스피스가 그 뒤를 잇게 됐다는 극찬이 필드를 채우고 있다. 닉 팔도(잉글랜드)는 “미국은 슈퍼스타를 원했다. 이제 그날이 왔다”고 평가했다.

스피스는 13일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최종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우승했다.

○ 1997년 우즈 vs 2015년 스피스

이날 스피스는 15번홀 버디로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중간합계 19언더파를 찍었다. 우즈가 1997년 세웠던 대회 최저타 기록인 18언더파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18번홀에서 1.5m 파 퍼팅을 놓쳐 우즈의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승리의 여신이 쇠락의 길에 접어든 우즈의 자존심 하나는 지켜주면서 새 영웅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남겨둔 것이다.

1997년 우즈의 12타 차 우승은 최다 타수 차 신기록이다. 스피스는 2013 US오픈 챔피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와 마스터스 3회 우승에 빛나는 베테랑 필 미켈슨(미국)의 추격을 4타 차로 따돌렸다. 맹수 같은 선배들의 위협에도 스피스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공동 선두로 출발했다 준우승에 머무른 스피스는 “실패의 경험을 통해 인내심을 배웠다”고 했다. 스피스는 우즈도 해보지 못한 와이어 투 와이어(1∼4라운드 선두 유지) 우승을 달성하며 1976년 레이먼드 플로이드 이후 39년 만에 아널드 파머(1960년), 잭 니클라우스(1982년) 등의 전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연습할 때 자신의 스마트폰을 쳐다보지도 않는 스피스는 경기할 때는 우즈와 같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코스 밖에서는 붙임성 있고 친절한 성격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골프 명예의 전당 회원인 칼럼니스트 댄 젱킨스는 “스피스는 벤 호건과 같은 강한 의지에 바이런 넬슨의 온화한 성품과 벤 크렌쇼의 부드러운 퍼팅 스트로크를 겸비했다”고 묘사했다.

○ 가족은 나의 힘


우즈의 1997년 마스터스 우승은 인종 차별이 심했던 미국 남부에서 열리는 마스터스 사상 첫 흑인 챔피언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 출신인 스피스는 애틋한 가족애로도 화제를 모았다. 야구 선수 출신 아버지와 농구 선수를 한 어머니 사이에 3남매 중 첫째인 스피스의 막내 여동생 엘리(15)는 원인 불명의 선천성 신경이상에 따른 자폐 증세로 지적 수준이 5세 정도에 머물러 있다. 스피스는 “엘리의 오빠여서 늘 겸손하게 살 수 있다. 힘겨워하는 동생을 보면서 삶의 치열함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피스는 대회 때마다 몸이 불편해 오지 못하는 엘리에게 기념 열쇠고리를 선물로 사다 준다. 이번에는 큼지막한 오빠의 그린재킷이 선물이 됐을지도 모른다. 스피스는 자선재단을 만들어 군인 가족, 장애아동 돕기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스피스의 남동생은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대의 농구 선수다. 스피스는 고교 시절부터 사귄 여자친구의 축하를 받고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한편 공동 17위(5언더파)로 마감한 우즈는 9번 홀에서 세컨드샷을 하다 오른쪽 손목 통증을 호소해 부상 재발 우려에 휩싸였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노린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4위로 마쳤다. 한국(계) 선수 가운데는 케빈 나의 성적이 내년 출전권이 보장되는 공동 12위로 가장 높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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