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기력 세계 최고 수준인데…스포츠산업은 ‘허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5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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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한국 경제의 신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스포츠의 나라’ 미국에서 스포츠 산업의 규모는 자동차 산업의 2배, 영화 산업의 7배다. 지난해 미국 스포츠산업의 시장 규모는 4220억 달러(466조7000억 원)로 평가됐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4%에 해당한다. 한국은 어떨까. 국내 스포츠 산업 현실과 가능성을 점검한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 스포츠산업 전체 매출액은 2013년 기준으로 약 40조8000억 원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2.85%로 GDP 대비 비율은 미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재정상태 등 내실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다.

국내에서 프로 팀을 운영하고 있는 축구(23개), 야구(10개), 농구(남 10개, 여 6개), 배구(남 7개, 여자 6개) 구단 중 흑자를 내는 구단은 단 한 곳도 없다. 모두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적자다. 반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뉴욕 양키스가 지난해 810만 달러(88억5100만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30개 구단 중 4개(LA 다저스와 필라델피아, 애리조나, 템파베이)를 제외하고 모두 흑자를 내고 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 개최 능력과 경기력에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월드컵, 여름 올림픽, 겨울 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6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중국은 월드컵을 아직 치루지 못했다.

이에 비해 국내 스포츠산업의 경쟁력은 허약한 수준이다. 용품, 시설, 서비스업으로 나뉘는 스포츠산업에서 한국은 양궁 관련 업체 등을 제외하고는 세계 수준과 격차가 크다. 스포츠 용품만 보더라도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글로벌 회사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기광 국민대 교수(스포츠경영)는 “정부가 그동안 경기력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국내 스포츠 산업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며 “즐기는 대상이나 건강을 위한 수단으로만 스포츠를 인식했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세혁 한국과학기술대학교 교수(스포츠경영)는 “국내에서도 스포츠 산업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며 6가지 성장 배경을 제시했다. 주 5일제 등 여가시간이 늘어나며 국민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간도 늘었고, 국민들의 건강과 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며, 스포츠이벤트의 흥행과 미디어의 발달로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또 스포츠과학의 발달로 다양한 스포츠장비가 개발돼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있고, 마케팅 기술의 발달로 스포츠 소비를 촉진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다양한 스포츠 시설과 스포츠 프로그램의 발달도 스포츠 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한국은행 산업연관표를 토대로 산출한 국내 스포츠산업의 부가가치 유발계수(0.791)는 전체산업(0.687)보다 높다.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최종수요가 한 단위 발생할 경우 국민경제 전체에서 직간접으로 유발되는 부가가치단위를 보여주는 계수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이 2013년 발표한 스포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포츠산업에 1조 원을 더 투자하면 6603명의 고용이 창출된다.

박 교수는 “스포츠산업이 경제 발전 및 고용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데 그동안 스포츠산업 육성을 등한시해 성장 기반이 약해졌다”며 “정부 차원의 제도적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일부 분야에서는 재정적인 지원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이런 상황에서 최근 문체부가 스포츠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각종 제도적 재정적 지원책을 만들고 있는 점은 희망적이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부 차원에서 스포츠산업을 지원하는 국가는 적지 않다. 호주는 2013년 총액 4700만 달러 규모의 스포츠 이용권을 국민들에게 지원해 스포츠 시설 이용과 용품 구입을 유도했다. 중국도 2012년 ‘스포츠 산업 5개년 계획’을 마련해 4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스포츠산업, 결국 돈이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이 2013년 스포츠관련 7000여개 업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스포츠산업 매출증대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2.1%가 정부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스포츠산업이 아직 투자자들에게 생소한 분야여서 투자를 받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직접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산업 관계자들은 “결국 돈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투자를 받지 못해 망한 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런 목소리에 화답해 내놓은 것이 ‘스포츠산업 펀드’다. 문체부는 올해 안에 정부 출자 200억 원과 민간 출자 200억 원을 합해 총 400억 원 규모의 스포츠산업 펀드를 조성한 뒤 모태펀드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매년 펀드 규모를 늘려 5년 뒤에는 2000억 원 이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모태펀드는 여러 투자자(출자자)로부터 출자금을 받아 모(母) 펀드를 조성한 뒤 자(子) 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투자자가 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투자펀드에 출자하는 것이다. 기업에 직접 투자하면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데 투자펀드에 출자하면 직접 투자의 위험을 줄이면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05년 정부의 모태펀드 조성 및 운영에 대한 법적인 근거인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4조2에 의거해 ‘한국모태펀드’가 처음 결성됐다. 모펀드는 정부자금으로 조성했고, 자펀드는 창업투자회사 등이 조성했다. 투자 결정은 전문기관인 한국벤처투자(주)가 담당한다. 현재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계정), 문화체육관광부(문화계정), 특허청(특허계정), 영화진흥위원회(영화계정), 미래창조과학부(미래계정), 보건복지부(보건계정), 고용노동부(중진계정)가 출자해 전체 1조8000억 원의 펀드가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조성될 스포츠산업 펀드도 한국모태펀드 내 ‘스포츠계정’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장달영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첫발을 내딛는 스포츠산업 모태펀드가 잘 운영되기 위해 제도적 미흡과 관리 감독 소홀 등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펀드가 활발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능성 있는 기업에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태펀드에 대한 정보는 한국벤처투자(http://www.k-vic.co.kr)에서 얻을 수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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