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용병과 팀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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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3월의 마지막 날 밤 절대 지칠 것 같지 않던 ‘차미네이터’ 차두리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축구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비슷한 시간 경기 화성종합체육관에서는 벽안(碧眼)의 여자 배구 선수가 눈물을 쏟아냈다. 도로공사의 외국인 선수 니콜 포셋이었다. 도로공사는 이날 경기에서 패해 창단 첫 우승의 꿈이 좌절됐다. 경기가 끝난 뒤 도로공사 선수들은 모두 울었다. 그중에서도 니콜은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감독까지 나서서 니콜을 달랬지만 니콜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주한미군 출신인 니콜은 3시즌 동안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더는 한국에서 뛸 수 없다. 배구연맹이 다음 시즌부터 해외 리그 3년 이하의 경험자만 뽑을 수 있도록 외국인 선수 규정을 바꿨기 때문이다. 팀 선배에게 한국말로 “언니, 고마워”라고 말할 정도로 친화력이 좋았던 니콜에게 한국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온 나라가 아니었다. 그런 니콜을 감독과 동료들도 흔히 말하는 ‘용병’으로 대하지 않았다. 서남원 도로공사 감독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다. 기량과 성품 모두 최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니콜이 울기 나흘 전에도 눈물을 흘린 외국인 선수가 있었다. 이번 시즌 한국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끝낸 뒤 그 선수는 한술 더 떠 대성통곡을 했다. 국내 프로농구 사상 첫 외국인 주장으로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의 기적을 이끌었던 리카르도 포웰이다. 전자랜드에서만 4시즌을 뛴 포웰도 니콜처럼 더이상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을 수 없다. 한국에 올 수는 있지만 외국인 선수 선발 규정상 다음 시즌에는 전자랜드가 아닌 다른 팀과 계약해야만 한다. 사실 2년 전만 해도 포웰은 사고뭉치에 가까웠다. 불성실한 훈련 태도에 팀 동료들에게 짜증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코칭스태프에게 대들기도 했다. 그런 포웰을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이 바꿨다. 유 감독은 포웰을 ‘용병’이 아닌 ‘팀원’으로 대했다. 주장을 맡긴 것은 그런 변화의 상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후 포웰은 훈련장 청소까지 나서서 할 정도로 달라졌다.

반면 눈물은커녕 한국을 모욕하고 떠난 외국인 선수도 있다. 지난달 퇴출된 프로농구 LG의 데이본 제퍼슨이다. 시즌 내내 안하무인격 태도로 불화를 일으키던 제퍼슨은 급기야 플레이오프 경기 전 애국가 연주 중 스트레칭을 해 팀은 물론이고 팬들을 분노케 했다. 제퍼슨의 돌출행동은 사실 팀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시즌 중 버젓이 술집을 돌아다녀도 팀은 제재하지 않았다. 경기에 출전해 기대하는 정도의 성적만 올려주면 된다는 식이었다. 팀원이 아닌 용병으로만 대한 것이다.

반면 프로농구 챔피언 3연패에 도전 중인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올 시즌 직전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을 퇴출시켰다. 지난 시즌 우승 주역인 벤슨은 개막 전 뒷돈을 요구하며 태업을 벌였다. 유 감독은 팀 분위기를 해치는 외국인 선수는 필요 없다며 주위의 만류에도 벤슨을 내쫓았다. 유 감독은 용병이 아닌 팀원을 택했고, 모비스는 올 시즌에도 우승 문턱까지 가있다.

그런 유 감독이 한 달여 전 외국인 선수 때문에 눈물을 훔쳤다. 2007년과 2010년 유 감독과 함께 모비스의 우승을 이끌었던 외국인 선수 크리스 윌리엄스와 브라이언 던스톤 때문이었다. 국내 프로농구 사상 첫 500승을 달성한 유 감독을 축하해주는 동영상에서 이들은 “함께한 농구 감독 중 최고였다. 개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다. 당신 같은 감독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유재학 감독의 팀원들이었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차미네이터#차두리#국가대표#데이본 제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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