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심장 그녀, 그린이 벌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4일 03시 00분


김효주, LPGA 파운더스컵 제패
10번홀 ‘벌집 트라우마’로 보기 기록… 위기서 강해져 이후 8개 홀서 5버디
루이스 추격 뿌리치고 3타차 완승

‘멘탈 슈퍼갑’, 강심장으로 유명한 김효주(20·롯데)도 두려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벌이다. “벌에 쏘여 되게 고생한 적이 있다.” 그런 김효주가 10번홀(파4)에서 트라우마에 빠졌다. 티샷한 공이 페어웨이 오른쪽의 커다란 벌집이 도사리고 있는 나무 옆에 떨어졌다. 정상적인 스윙이 불가능한 볼 위치여서 자칫 나무라도 때린다면 벌들이 몰려들 수 있었다. 김효주는 경기위원을 불러 구제 여부를 물었다. 골프 규칙 1조 4항에 규정된 ‘형평의 이념’에 입각해 벌이나 방울뱀이 위협이나 방해가 될 경우 한 클럽 길이 이내에서 벌타 없이 볼을 드롭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규칙 도사로 불렸던 김효주로서는 벌도 피하고 볼도 옮기는 일석이조를 노린 시도였다. 하지만 경기위원은 벌집이 선수와 가까이 있지 않고 하프 스윙밖에 안 되는 트러블 상황인 점을 감안해 허용하지 않았다. 난감한 표정을 지은 김효주는 페어웨이로 공을 레이업한 뒤 3m 파 퍼트를 놓쳐 보기를 했다.

10번홀까지 타수를 줄이지 못해 추격을 허용했던 김효주의 머릿속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하지만 그는 위기에서 더욱 강해졌다. 11∼13번홀에서 3연속 버디를 낚은 뒤 15, 18번홀에서 다시 버디를 추가했다. ‘벌집 해프닝’ 이후 8개 홀에서 5타를 줄이는 매서운 뒷심을 제압할 상대는 없었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뛰어든 김효주가 3번째 도전 만에 첫 트로피를 차지했다. 김효주는 23일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와일드파이어GC(파72)에서 끝난 파운더스컵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2개로 5타를 줄여 최종 합계 21언더파 267타로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김효주는 시즌 처음 출전한 미국 본토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실질적인 ‘빅 리그’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비회원 시절을 포함해 LPGA 투어에 13번 나서 한 번도 공동 25위 밖으로 내려간 적이 없는 그는 8위였던 세계 랭킹을 4위까지 끌어올렸다. 리디아 고(1위), 박인비(2위), 루이스(3위)의 삼각구도에 한국 필드를 평정한 김효주가 가세한 것이다. 김효주는 평균 타수 1위(69타)에 올랐고, 신인왕 포인트 순위도 3위까지 점프했다. 김효주는 “10번홀이 내게 큰 도움이 됐다. 보기를 한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려워하거나 긴장하지 말고 더 집중하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효주의 정상 등극으로 한국(계) 선수는 올 시즌 개막 후 6개 대회 우승을 모두 휩쓰는 초강세를 이어갔다. 지난 시즌을 포함하면 10연승 행진 중이다. 상금 랭킹 15위 이내에 한국(계) 선수만도 10명이나 될 만큼 대회마다 ‘집안싸움’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일희와 이미향(이상 공동 3위), 최나연과 김세영, 리디아 고(이상 공동 6위)가 톱10에 진입했다.

‘코리안 강세’의 최대 피해자는 루이스가 꼽힌다. 루이스는 올해만도 양희영과 김효주의 벽에 막혀 준우승 2회에 머물렀다. 이날도 김효주와 막판까지 버디를 주고받는 난타전을 펼쳤으나 자신보다 열 살 어린 스무 살 신인의 뚝심에 무너졌다. 루이스는 18번홀에서는 매너 논란에까지 휩싸였다. 루이스는 3m 거리에서 2퍼트만 해도 우승이 확정되는 김효주보다 짧은 1.2m 파 퍼트를 남겨뒀다. 이런 경우 챔피언에 대한 배려로 루이스가 먼저 홀아웃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루이스는 김효주에게 먼저 홀아웃하도록 했다. 김효주는 버디 퍼팅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를 했고, 루이스는 3퍼트로 보기를 했다. 루이스는 “효주는 너무 견고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효주 美여자골프 데뷔 첫승
김효주 美여자골프 데뷔 첫승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김효주 美여자골프 데뷔 첫승
김효주 美여자골프 데뷔 첫승
#김효주#루이스#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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