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 타는 이승훈 “열심히 달렸는데, 아저씨들이 추월해 충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5일 22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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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승훈 선수(왼쪽)가 한국 사이클의 전설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와 함께 사이클 훈련을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한국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간판 이승훈 선수(왼쪽)가 한국 사이클의 전설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와 함께 사이클 훈련을 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소치 겨울올림픽 2관왕인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황제 스벤 크라머르(28·네덜란드)는 ‘자전거 마니아’다. 취미인 사이클은 그의 훈련 프로그램에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달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출전을 위해 방한한 그는 한국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한 일일 클리닉에서도 “장거리 종목을 잘하려면 사이클 훈련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이승훈(26·대한항공)도 사이클을 탄다. 소치 겨울올림픽 남자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딴 그는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살아있는 전설’ 크라머르를 벤치마킹해 보자는 게 시작이었다. 5월 도로 사이클을 구입해 혼자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한국 사이클의 전설적인 스타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52)와의 만남은 이승훈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줬다. 이승훈은 자전거를 고치러 우연히 김 대표의 가게를 찾았다가 의기투합했다. 일년 365일 중 300일 이상 장거리 자전거를 타는 김 대표와 함께 사이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에게 도로 사이클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의 도로 사정과 운전 문화 때문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인 김 대표와 동행하면서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시즌이 시작된 11월 이전까지 둘은 매주 서너 차례 서울에서 경기 양평군 양수리나 가평군 유명산까지 왕복 70~130km를 달렸다. 이승훈은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 훈련은 지루하기 때문에 가끔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을 느끼며 세상을 가르는 자전거는 3~4시간을 타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산과 언덕을 넘을 때면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승훈은 봄부터 가을까지 쏟은 땀의 보상을 요즘 들어 톡톡히 받고 있다. 이승훈은 13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 팀 추월에서 김철민(22·한국체대), 고병욱(24·의정부시청)과 함께 금메달을 수확했다. 한국 빙속이 월드컵 대회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다. 15일 열린 매스스타트에서는 40점을 얻어 요릿 베르흐스마(네덜란드·70점)에 이어 은메달을 추가했다.

그럼 ‘사이클 선수’로서의 이승훈은 어떨까. 김 대표는 “원체 지구력이 좋더라. 심폐 기능이 좋아서 언덕을 올라갈 때는 나도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승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8월 그는 투르 드 코리아 예선으로 열린 동호인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달린다고 달렸는데 중년 아저씨들이 나를 훌쩍 추월하더라.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후 그렇게 낮은 순위는 처음 해 봤다. 더 열심히 타서 내년에는 사이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웃었다.

빙속 선수 출신으로 사이클 선수로도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에릭 하이든(56)을 꼽을 수 있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올림픽에서 전 종목(500m, 1000m, 1500m, 5000m, 1만m)을 석권하며 5관왕에 오른 그는 은퇴 후 사이클 선수로 변신했다. 1985년 전미 프로사이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1986년에는 세계적인 도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도 출전했다. 겨울올림픽에서만 이미 3개의 메달(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1, 은1, 2014년 소치 올림픽 은1)을 딴 이승훈이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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