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015 V리그 팀별 전력분석] 끈끈한 ‘거미줄 배구’로 명가 재건 나서는 흥국생명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6시 40분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왼쪽)이 19일 평택 이충문화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V리그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에 ‘거미줄 배구’를 앞세워 명가재건을 꿈꾸고 있다. 평택|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왼쪽)이 19일 평택 이충문화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V리그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에 ‘거미줄 배구’를 앞세워 명가재건을 꿈꾸고 있다. 평택|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7. 이기는 법을 배워온 흥국생명

개막전 GS칼텍스 상대 3개월 전 역전패 설욕
박미희 감독 “승부는 멘탈에 달려” 의미 부여
일본팀과의 연습경기·설악산 등정 훈련 효과

새 용병 루크, 까다로운 타구·묵직한 서브 굿
루키 이재영도 팀 합류 5일 만에 가능성 확인

흥국생명은 여자배구가 처음 프로화를 선언한 2005∼2006시즌 정규리그 1위의 기세를 모아 첫 통합우승을 일궜다.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4시즌 동안 리그를 평정했다. 3시즌 연속 통합우승 일보직전에서 물러났지만 4시즌 가운데 3차례 우승과 한차례 준우승을 했다. 화려했던 날이었다. 사람들은 ‘미녀군단’이라고 불렸다. 모두 김연경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연경과 이별하는 과정에서 많은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서로가 상처 받았다. 2010∼2011시즌 준우승 이후 흥국생명은 추락했다. 여러 차례 감독이 물러났고 새 감독이 왔다. 선수들은 승리보다 패배에 익숙해졌다. 5위∼5위∼6위의 성적으로 화려했던 그날을 그리워하던 흥국생명은 시즌을 앞두고 큰 변화를 선택했다.

● 사상 2번째 여자감독 박미희가 가져다준 변화

7월 KOVO컵에서 데뷔전을 치른 박미희 감독의 배구는 수비에서 나왔다. “이삭 줍듯 부지런히 상대의 공격을 선수들이 잡아내고 중앙에서 다양한 공격으로 점수를 내고 싶다”는 감독의 요구를 선수들은 잘 따랐다. 4년 만에 KOVO컵에서 승리를 거뒀다. 감독은 질책대신 격려를 했다. 잘못보다는 잘한 것을 앞세우며 선수들의 마음을 열었다. 새로 팀에 합류한 FA센터 김수지와 레프트 신연경 효과가 컸다. 정시영의 분발도 반가웠다. 2연승으로 예선 1위를 차지했다. 마침 박 감독의 아들은 군에서 휴가를 나와 안산 상록수체육관을 찾았다.

꼭 우승 트로피 가지고 오라고 당부했지만 준결승전에서 GS칼텍스에게 2-3으로 역전패했다. 먼저 2세트를 따내고도 신연경의 부상과 위기에서 흔들린 선수들의 마음이 4강에서 머무르게 만들었다.

● 산악훈련에 일본팀과 연습경기…밀도가 높았던 시즌 준비

KOVO컵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뒤 시즌 개막 준비에 나섰다. 용인훈련장에서 계속된 훈련의 밀도는 높았다. 일본의 JT(재팬타바코)와 PFU를 불러 많은 연습경기를 했다. 강인한 체력을 위해 설악산도 탔다. 모든 선수가 대청봉 정상에 올랐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명여고의 공격수 이재영을 선택했다. 큰 공격을 해줄 선수가 필요했던 팀의 현실을 감안했다. 박 감독이 호주에서 직접 기량을 확인한 뒤 외국인선수 레이첼 루크를 선택했다. 감독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루크는 V리그에서 뛰고 싶어 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흥국생명이 어떤 팀이고 훈련장 등까지 미리 연구해둔 그 열정을 높이 샀다. 친화력도 좋았다. “시키는 일은 모두 한다”고 장담했다. 한국보다 아래인 호주의 국가대표였지만 터무니없는 공도 혼자 처리하는 투지와 힘이 박 감독을 사로잡았다.

신연경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윙 리시버 자리는 슈퍼루키 이재영에게 맡겼다. “어린 선수에게 부담을 지워서 미안하지만 공격과 수비가 되는 레프트가 많지 않다. 잘하고 당차지만 여고생이다. 주위의 기대가 커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앞서는 데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할 선수”라고 했다. 이재영의 어머니 김경희 씨는 박 감독과 88서울올림픽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운동했던 막역한 사이. 김 씨는 딸을 맡겼고 박 감독은 새로운 딸을 얻었다.

● 운동은 근육의 기억이지만 멘탈은 대화다

흥국생명의 훈련은 꼼꼼했다. 여성 감독 특유의 디테일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수비와 연결마다 감독이 코치들에게 맡겨두지 않고 직접 세부적인 것을 체크했다. 훈련에서 강조한 것은 대화였다. “기술은 몸이 기억하지만 이기거나 지는 것은 멘탈”이라며 기술보다는 마음의 치료에 중점을 뒀다. 팀의 운명을 짊어진 세터 조송화와 감독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공포에 솔직해지도록 했다. “누구나 다 떨린다. 긴장한다. 나도 그랬다. 그것을 먼저 이겨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경기나 훈련 때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상대보다는 우리가 연습한 것을 자주 생각하자.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그동안 땀 흘려 연습해온 것, 잘하는 것을 하자”고 격려했다. 훈련은 엄격했지만 쉬는 시간은 철저히 보장해줬다. 남자 지도자들은 얼씬도 할 수 없는 여자 선수들의 숙소에 갈 수 있는 여자 감독이지만 되도록 멀리 했다. 자신의 선수시절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 시즌 개막전의 설욕 1승보다 더 가치 있는 출발

19일 평택 이충문화체육관에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디펜딩챔피언이자 KOVO컵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안긴 팀이었다. 이번에도 풀세트 경기였다. 7월 패배 이후 3개월의 준비는 흥국생명에게 승리를 안겼다. 파이널세트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대담함과 침착한 플레이, 열정은 GS칼텍스를 압도했다. 15-5의 스코어가 그것을 확인시켰다. 박 감독은 “오늘 승리는 몇 승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선수들 머리 속에 있던 의문이 사라지게 했다.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는 이기는 기억이 중요하다”며 기뻐했다.

루크는 상대 쌔라 파반을 압도했다. GS칼텍스 이선구 감독은 “힘이 좋고 공을 때리는 타점이 정확하지 않다보니 우리 블로킹이 더 막기가 어려웠다. 타구가 지저분해서 수비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루크의 최대 장점은 서브였다. 강력하고 묵직한 서브가 경기 내내 코트 안으로 파고들었다. 에이스는 2개뿐이었지만 GS는 루크의 서브에 부담을 가졌고 리시브에서 무너졌다.

더 중요한 것은 이재영의 가능성 확인이었다. 팀에 합류한지 5일 밖에 되지 않고 아직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높은 타점과 과감성은 루크와 공격의 균형을 맞출 기대주임을 확인시켰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롤 모델 김연경과 함께했던 시간이 큰 도움을 줬다. “작은 키의 선수는 공격보다 리시브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4세트에서 결정적인 서브아웃과 서브리시브 실수로 듀스를 허용했지만 그 순간에도 미소를 지었다. “배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는 것이 싫었다. 경기 내내 재미있었다”며 파이널세트의 긴장을 즐기는 당돌함도 보였다. 물론 아직은 자신의 말처럼 완벽한 멘탈을 갖추지 못했지만 대담했다.

박 감독이 잘 다듬어 온 김수지 김혜진의 아기자기한 이동공격은 흥국생명의 공격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거미를 연상시키는 끈끈한 수비그물로 수없이 많은 랠리를 만들어 여자배구를 보는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게도 해줬다.

● 흥국생명의 1라운드 변수는 이재영의 공백

첫 단추를 잘 꿴 흥국생명은 앞으로 이재영 없이 1라운드 4경기를 치러야 한다. 제주 전국체전 출전(10월 28일∼11월 3일)을 위해 21일부터 팀을 떠나야 하는 이재영이 컴백할 때까지 경기가 몰려 있다. 그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지난해 전체 1순위로 뽑은 신인 공윤희도 전국체전에 출전했다가 부상으로 시즌을 망친 기억이 있기에 박 감독의 걱정은 크다. 부상중인 정시영과 신연경의 공백까지 겹쳐 고난의 4경기를 잘 버티느냐가 중요하다.

‘세터와 리베로가 탄탄한 팀은 쉽게 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지난 시즌 흥국생명의 발목을 잡은 것도 세터∼리베로 라인이었다. 다행히 2번째 풀시즌을 맞는 세터 조송화가 훨씬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플레이를 한다. GS와의 첫 경기 때도 토스의 정확성은 간혹 아쉬웠지만 분배의 판단은 지난해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동료를 이끌고 팀의 컬러를 유지하는 기량도 훈련 때처럼 보여줬다. 시즌의 키 플레이어다웠다. 부상으로 한 시즌을 쉬었던 리베로 김혜선의 가세로 디그와 서브리시브도 탄탄해졌다. 무엇보다 모든 선수들이 보여준 수비에서의 공에 대한 집념이 달라진 핑크색 거미군단의 모습을 확인시켰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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