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아경기]‘6개월 초보’ 女크리켓의 아름다운 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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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취재 왕초보 주애진의 ‘인천 프리즘’]

주애진 기자
주애진 기자
《 ‘스포츠는 인생이다.’ 그렇다면 전 여태껏 인생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스포츠부에 첫발을 디딘 것은 2개월 전. 201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국제부, 사회부를 거쳤지만 처음 보는 스포츠의 세계는 말 그대로 신세계입니다. 스포츠 초보인 기자가 본 2014 인천 아시아경기의 생생한 현장을 선입견 없는 시각으로 독자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

“첫 승리, 축하합니다.”

지난여름, 취재차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인사말이었다. 크리켓의 매력에 빠져 더위도 잊고 훈련하던 모습에 반해 응원하게 됐기 때문이다. 22일 한국과 홍콩이 맞붙은 인천 아시아경기 크리켓 여자 조별예선. ‘사상 첫 출전’이라는 위대한 도전에 나섰던 한국 여자 대표팀의 두 번째 경기였다.

“우와.” 먼저 수비에 나선 선수들은 홍콩 타자를 아웃시킬 때마다 기쁨에 겨워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원래 팀 분위기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표팀이었다. 맏언니 전순명(46)부터 막내 송승민(19)까지, 4월에 나란히 태극마크를 단 이들은 크리켓을 함께 시작한 동기였다. 크리켓이 뭔지도 모르던 이들은 ‘국가대표’ 네 글자에 끌려 빨랫방망이 같은 배트를 쥐었다.

이날 6개월의 짧은 여정을 마감한 이들의 도전은 잠시 멈췄다. 한국은 홍콩에 57-92로 패했다. 마지막 타자 가예빈(20)이 아웃될 때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앞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49-51로 패한 대표팀은 2연패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들의 이번 대회 목표는 ‘무조건 1승’이었다. 생소한 크리켓을 알려 다음 아시아경기에도 반드시 출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실패는 그저 다시 시작할 기회”라는 헨리 포드의 명언이 이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실패는 마지막과 같았다. 경기장에 선 선수들은 점수와 상관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10명의 타자가 다 아웃될 때까지 주어진 기회를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외신 기자들도 “6개월밖에 안됐으면 공을 맨손으로 받기도 어려울 텐데”라며 대표팀의 활약에 감탄했다.

선수들은 크리켓 경기가 방송으로 생중계되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주장 오인영(25)은 “중계가 됐으면 혹시 컬링처럼 관심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크리켓 소프트볼 등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자신을 알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표팀의 경기는 중국과의 경기(20일)만 23일 녹화 방영된다. 선수들은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크리켓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팀은 소원대로 다음 아시아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확실치 않다. 하지만 선수들의 열정이 꺼지지 않는 한 이들의 크리켓도 계속될 것이다. 그간 선수들이 흘린 땀에 박수를 보낸다. 다음 아시아경기에서는 꼭 못했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첫 승리,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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